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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롱의 가장 인간적인 불빛

이윤희(미술평론가)

인공적인 조명은 근대 과학의 성과이고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지만, 여러 인공물들 가운데 인간이 감정을 담아 사용하고 바라보는 독특한 것이 바로 조명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빛은 생활공간을 밝히는 실용적인 역할 뿐 아니라, 화려함이나 고즈넉함, 포근함 등의 감정을 담은 분위기를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김미롱의 검은 화면 뒤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들 역시 전기를 전달하는 전선과 전구 등의 기계적 장치를 이용한 것이지만 특정한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시의 밤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김미롱은 검은 화면 속에서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작은 불빛들만으로 풍경을 구성한다. 남산타워나 한강의 다리 등 특정할 수 있는 지표가 보이는 작품도 있고,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에나 있는, 그래서 어디라도 상관없는 풍경을 구현한 작품도 있다. 대개 그의 작품은 서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알아볼 수 있는 지표들과 더불어 시대사적으로 읽히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것이 왜 낮의 풍경이 아니라 밤의 풍경이어야 하는 것일까.

낮과 밤은 이성과 비이성, 합리와 비합리, 삶과 죽음 등으로 상징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크게 구분해주는 자연의 이분법적 장치이다. 그래서 낮과 밤이 교차되는 황혼의 시간에 대해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라는 표현으로 어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담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미롱에게 있어서 밤의 풍경은 낯설고 두렵고 위협적인 세계가 아니라 반대로 낮 동안의 공격성이 사라지고 사유의 지점이 열리는 시간의 풍경이다. 숨막히는 속도만이 생존을 보장하는 도시를 고향과 같은 이미지로 만드는 시간, 먹고 사는 일에 밀린 상처 회복의 시간이자 사회적 관계의 그물에서 벗어나 태어난 그대로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으로서의 밤. 그래서 도시의 밤 풍경 속에서 반짝이는 익명의 빛들은 서로를 애잔하게 알아보는 것이다.

실상 검은 화면 뒤에서 반짝이는 전구들이 전기를 전달하는 기계적 장치에 불과할지라도, 김미롱의 화면 속에서 그것은 대단히 인간적인 정서를 획득하고 있다. 불빛들 하나하나는 살아 있거나 한때 살아있었던 인간의 생명과 삶의 의미에 대한 기표로 작용한다. 그리고 도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작품은 활기차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반대로 음울하고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또 다른 장면이기도 하고,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예견하는 장면 같기도 하다.

주로 2015년과 2016년에 제작된 밤 풍경 화면 이전에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은 2014년의 작품 <Wind, Water, and Tears>에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미국 시카고 유학을 통해 Art and Technology로 분야를 조정한 김미롱은, 한동안 키네틱 조각으로 분류될만한 다소 역동적으로 보이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유학 중 발표되었던 동물의 털가죽을 연상케 하는 패브릭과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사물들간의 소통/불통을 전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러던 중 최근의 검은 풍경과 연결되는 작업 한 점을 선보이는데, 그것이 <Wind, Water, and Tears>이다.

이 작품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못난이진주알을 일일이 박아 형상화한 것으로, 푸른 화면에 반짝이는 진주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가려진 서사에 대한 관심이 담긴 작품이다. 금문교는 미국 서부 해안의 샌프란시스코만과 태평양을 잇는 해협을 잇는 다리로 일반적인 강에 축조되는 다리와는 달리 거대한 높이와 길이를 자랑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관광거점인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위용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대신, 김미롱은 다리를 건설하면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한 정보를, 그리고 완공 이후 1300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의 사람들이 이곳을 자살의 장소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각인한다. 진주 알갱이들은 이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 하나하나의 생명을 상징하는데, 진주는 다리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리 아래의 물살의 반짝임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마치 떠밀려 내려온 듯한 진주알갱이들은 바닥까지 흘러내려와 시간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늘 사물이라는 것은 중립적이고, 그것에 어떤 의미가 부여된다면 그것은 바라보는 이의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그는 복잡한 도시의 풍경 가운데서도 밤의 풍경을, 아름다운 샌프란스시코의 금문교에서도 죽음의 사연을, 그리고 빛을 이용하면서도 그림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역시 2015년에 제작된 <Shadow Box II-Great Childhood>은 조명을 이용한 그림자 작업으로, 쌓아올려진 몇 개의 박스 안에 조합된 이미지들이 순차적으로 세 개의 벽면에 그림자로 투사되는 작업이다. 하나하나의 이미지들이 구체적인 순간이나 계기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작품 안에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연결되거나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실제와 상상 그 사이에 있는 작가 혹은 어떤 인물의 기억 속 이미지들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인간은 구체적인 육체를 가지고 구체적인 시간을 살아나가지만 지나온 경험들은 모두 이미지로 바뀌어 저장되며, 그것은 이 작품에서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방식처럼 잠깐씩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기억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보편적인 과정을 연상케 하는 지점 때문에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은 이 작품 앞에서 관객은 자신의 개인적인 지난 과거와 현재적 삶, 상처와 고통, 두려움과 막막함에 대한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김미롱의 작품은 분명 인공적인 기계장치들을 사용하여 제작된 테크놀로지 아트 계열의 작품이지만, 결코 기술에 대한 관심 그 자체가 전면에 부상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사용하고 있는 빛과 그림자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을 깊은 상념의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그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경험들로부터 출발했으나 동시대적 보편성에 가 닿는 넓은 공감의 폭을 지닌다. 그가 사용하는 불빛들, 그리고 그림자들이 ‘인공적’인 것을 넘어 대단히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