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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미의 물구경, 꽃구경

1.
수원 화성행궁 벽화마을 내  대안공간 눈에서 2016년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라오미의  『물구경, 꽃구경 Ⅱ』전이 열렸다.
이곳 화성행궁 벽화마을에서 2014년 “신화와 예술 맥놀이”가 펼쳐졌는데 그 때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에서 건너온 중남미 작가 3인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바다의 어머니 신, 물고기의 아버지 신, 꽃의 여신에 관한 신화를 갖고 와 대안 공간 눈과 잇댄 예술공간 봄의 외벽에 신화이야기그림을 벽화로 남겼다.
그런데 이번에 라오미 작가가 우리 무가(巫歌) 속의 신화 바리데기 이야기를 작품으로 받아낸다하여 건너갔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았으나 청을 받아들여 저승가기를 택한 그녀, 석삼년 아홉 해의 고생 끝에 이룬 성취, 그리하여 죽은 부모를 되살린 그녀, 바리데기 공주.

라오미는 굿판을 잔잔하게 때론 격하게 이끄는 장구의 북 가죽을 모아 그 위에 흑색, 은색, 금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검은 털을 덧붙여 꽃잎을 만든 다음, 이것으로 저승꽃을 형상화하였다. 저승꽃 꽃잎 하나하나에 상징과 서사가 담겼다.

바리데기는 끝없는 사막과 넓은 벌판을 지나 열 개의 지옥과 깃털조차 뜨지 않는 검은 강 ‘유사하’를 건너 무장승을 만난다.

라오미는 무장승을 평행봉 위에서 쉼없이 몸 운동하는 사내로 표상(表象)하였다.

무가 속 무장승 묘사는 이렇다.

키는 하늘에 닿을 듯하고 눈은 등잔만 하고 얼굴은 쟁반처럼 크고 손은 솥뚜껑 같고 발은 석 자 세 치이다.

바리데기가 무시무시한 무장승을 만나 크게 세 번 절을 올리자 무장승이 그녀에게 묻는다.

그대가 사람이뇨 귀신이뇨?날짐승 길버러지도 못 들어오는 곳에어떻게 들어왔으며, 어디서 왔느뇨?

바리데기 공주가 답한다.

나는 국왕의 일곱째 대군으로, 부모 살리러 왔나니

무장승이 묻고 바리데기가 답한다.

물값 가져왔냐?  아차 중에 잊었나니풀값 가져왔냐?  바삐 오는 길에 잊었나니나무값 가져왔냐?  자주자주 잊었나니

무장승이 뚫어지라 바리데기를 보다 은근조로 명한다.

밑 빠진 두멍에 물 삼 년 길어주소 불 삼 년 때어주소낫 없이 나무 삼 년 베어주소

약속한 석삼년 아홉해가 가고  무장승이 바리데기에게 일러준다.

그대가 길어다 쓰는 물이 약수이니 가져가고베던 풀은 개안초이니 가져가오 뒷동산 후원의 꽃은 숨살이꽃, 뼈살이꽃, 살살이꽃이니 가져가오

라오미 작가는 딸자식을 버렸음에도 부끄럼을 무릅쓰고 찾아와 저승가기를 청한 친부모 오구대왕 부부와 그녀를 길러준 양부모 비리공덕 부부 그리고 석삼년 아홉 해 동안 바리데기를 묶어 논 무장승과  신화 속 주인공 바리데기를 품으며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였을까?

2.
바리데기는 만신의 인위왕(人爲王)이 된 무속(巫俗) 신화 속 여인이다.
만신이란 무당을 존중하여 부르는 말이다. 만신의 인위왕(人爲王)이란 무당들의 시조신, 즉 무조신(巫祖神)이다.
무당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 동안 신과 인간을 매개했던 시원(始原)종교, 고대종교의 사제들이다. 현재 몽골에서는 샤먼대학이 설립되어 마치 가톨릭 사제들을 육성하는 신학교같이 성직자로서의 샤먼을 배출하고 있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받든 조선은 불승(佛僧)과 무당을 심하게 하대하였고,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서학(西學)이 승하여 무당이 폄하되고 있다.
바리데기는 ‘바리’라는 이름에  ‘_데기’라는 얕잡아 이르는 말이 합성된 것이다. 바리데기 신화는 조선시대 양대 전란이후 사회적 지위가 더욱 악화된 여성들과 무녀(巫女)들 사이에서 특별히 더 사랑을 받았다.
바리데기 신화는 전승되는 버전(version)이 여럿인데 신이 된 최초의 무당으로 ‘무당되기’의 지난한 과정과 깨달음을 서사화한 것이다.
라오미 작가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자기(自己)되기’의 한 전범(典範)으로 바리데기를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현대 한국사회는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이라는 공동체마저 핵가족화하고 현세적 욕망, 이기적 욕망을 부추키며 가정 구성원 개개인마저도 언제든지 결별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개별화, 파편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인간의 약점을 부여잡고 이를 사회통제의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하게끔 하며,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축적한 자산 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축복의 말은 “부자되세요”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선망의 대상은 권력과 재력 또는 사회적 자본을 세습한 3세들이다. 자본 축적과 권력 획득의 동인과 배경 그리고 과정은 불문이고 오직 결과가 중시되고 있다. 돈의 힘, 금력이 최고이며 물신(物神)숭배가 노골화되고 있다. 물신숭배자들은 부귀영화(富貴榮華)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열망한다.
라오미 작가가 드러낸 무장승의 상징은 전후 직선운동에 열중인 사내 (그 가운데 진시황이 있다), 금칠한 숫호랑이의 머리 가죽이었다.
쉼 없는 직선 상승운동을 통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지향점은 부귀영화와 불로장생 (그리고 성적 열락)이었다.
황금문명에서 추락하여 마침내 납의 문명에 이른 현대문명 속 욕망(慾望)의 화신을 라오미 작가는 무장승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라오미 작가는 심장에 검은 털난 사람들이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하며 이름값마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며 값 올리기에 열중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들이 저승마저 장악하여 속물화(俗物화化)하고 있음을 어둡게 암시한다.
라오미 작가는 벌거벚은 나신(裸身)들이 바닥에 줄지어 웅크리고 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 썼는데 그 속에 스스로를 투영하였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비롯하여 갈림길에서 고심하는 자신을 드러냈다.
수없이 궁채, 열채를 맞아 이제는 얇아지고 찟겨버린 가죽과 검은 털로 저승꽃, 꽃잎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 사연을 그려냈다. 수없는 바리데기의 분신들, 그녀들의 선택은 ‘또 다른 나들’의 선택이었다.
마침내 바리데기의 깨달음과 자신의 개안(開眼)을 일체시키며 ‘물구경 꽃구경’을 권유한다.
라오미 작가의 꽃구경 물구경 전은 작가가 스스로 되기를 통해 보여준 홀로그램 우주를 관통한, 어쩌면 지금도 가고 있는 인생 여행길 자각(自覺)의 산물이었다.  

검고 어두워 역설적으로 화려한 라오미 작가의 물구경 꽃구경 전을 보고 나오며 나는 금강경의 한 구절을 되새김하였다.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네.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


                                                        량원모 aka 라원식(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