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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창조성, 그 시원(始原)을 보다

정재훈

예술은 언제, 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흔히들 인간의 미적 활동의 시원을 문명 탄생 이전, 손을 사용해 최초의 도구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최초의 도구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손도끼와 창과 같은 도구(무기)의 진화를 통해 인류 문명의 진화를 설명하려한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를 남성 중심적 편견으로 보고 최초의 도구는 나무의 뿌리를 엮어 아이를 엎고 다니기 위해 만든 끈이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단지 재료가 쉽게 썩어 없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증명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수렵채집인들의 삶에서 먹거리의 70% 이상을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에게 이동과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최초 도구 제작설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여전히 바구니를 만들고 토기를 굽는 것이 여성 고유의 영역인 문화적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민족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그 구체적인 형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분명 여성들도 일상의 필수품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가며 보다 편리하고 행복한 일상을 꿈꾸었을 것이 틀림없다.

대안 공간 으로 향하는 길목, 어디에선가부터 구수한 향이 풍겨 나왔다. 골목 어딘가, 누군가의 집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기도 전에, 나는 뭔지 모를 황금빛 물체가 다양한 형태로 재단되어 빨래처럼 널려있는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건 도대체 뭘까?” 호기심의 급습으로 제한된 공간에 다소 산만하게 펼쳐져 있는 작품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갤러리 내부로 들어갔다. 다양한 형태의 사물로 가득한 그곳은 마치 신비의 숲과 같았고, 순간 나는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로 변신해 가고 있었다. 초기의 당황스러움은 점차 신비감과 작품에 대한 경외감으로 변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김상미 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당혹감과 신비로움으로 시작되었다. 수줍음이 많은 듯, 조용조용한 분위기의 작가는 국물을 내고 나면 버려져야 하는 멸치의 하찮음이 자신의 상황을 떠 올렸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품 속에는 평범한 주부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멸치의 배를 갈라 마른 내장을 끄집어내며, 그것을 펴서는 풀로 이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천을 만들고, 심지어 그 천을 실로 꿰매어 아기자기한 꽃과 고양이, 아기 곰까지 만들었다. 물론 그 변신의 과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작품을 위해 사용한 어마어마한 양과 그 멸치를 처리하기 위해 투입한 시간을 빼고 생각해도 말이다. 변신은 멸치만의 몫이 아니었다. 버려진 천을 꼬아 화려한 색상의 줄을 만들어 멸치비늘 작품을 걸어 놓는데 사용했다.

작품의 배후에는 작가의 자기연민을 초월한 사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변화를 위한 파워풀한 에너지가 숨겨져 있어 보였다. 그 까닭에 그의 작품은 가치 없는 것에 새로운 생명력을 입혀주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버려진 것이 받은 상처에 대한 치유의 제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애착과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의 사랑은 자기 치유라는 인고의 과정을 넘어 상처 받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마저 갖고 있어 보인다.

멸치국물을 내기 위해 마른 멸치를 손질하는 풍경은 최근 우리에게는 잊혀져가는 풍경이다. 인공 조미료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던 시대에 엄마 손맛의 숨겨진 비법이었을 법한 이 활동은 한가한 저녁 시간 때에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함께 하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엄마가 권한을 재확인 받을 수 있었던 모계적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 속에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함께 여성(혹은 엄마)의 가족에 대한 권한과 영향력에 대한 바람이 묻어 있는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구수한 국물을 내기 위해 멸치의 내장을 빼내는 여성의 작업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뻔한 일상 속에 흔해 빠진 사물에 미적 가치를 입히고, 삶의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멸치비늘작가 김상미는 하나만으로는 한낱 멸치인 것을 여럿 모아 연결하여 천을 만들고, 그 천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아름다운 사물로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존귀하며, 아무리 하찮은 것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마법과 같은 작가의 손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가내수공업展」(2016. 7. 15~28)은 김상미 작가의 앞으로 전개할 미적 도발에 비하면 아주 조용한 서막에 불과할 것 같다. 천으로 변신한 멸치가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되었듯이 작가의 사물에 대한 사랑과 예술적 변신을 위한 열정은 또 다시 새로운 미적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원시적인 창조의 에너지로 충전된 김상미 작가의 앞으로의 예술적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