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이젠 괜찮아>
 
일시 ; 2016, 6, 3, 금 - 6, 16, 목
장소 ; 대안공간 눈 1전시실

작가와의 만남 : 2016. 6. 4 (토) pm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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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서문

살아가기 위해서 밥을 먹습니다.
하지만 밥은 몸에 어느 정도 에너지로 저장 될 뿐 그 자체로는 저장할 수 없지요.

아무리 한꺼번에 많이 먹더라도 그 한 번으로 며칠을 살아 갈수는 없습니다.
주로 사막에 살고 있는 선인장은 살아남기 위해 체내에 수분을 한껏 머금고 있습니다. 때문에 물이 없어도 오랫동안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전 처음 선인장의 이런 모습이 사막과도 같은 세상 속에서 버텨 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애써 즐겁고, 즐거운 상상을 해보며 상실과 공허함을 달래는 선인장을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단지 살아가기 위한 수분 저장은 오히려 잎을 가시로 만들 듯, 애쓸수록 그 공허함은 커져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선인장은 하나가 아닌 둘, 그리고 여럿입니다. 내 안에만 채우려 한 것들을, 덜 채울지라도 함께 나누고 의지 할 수 있는 대상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밥을 먹는 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식사 자리는 늘 사랑이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6 작가노트 중에서-
 

평론_
인간은 운명적으로 우울을 가슴에 품고 산다. 불안과 고독을 내면에 쌓아두고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아무리 행복한 삶도 그러므로, 본질은 외로움이다. 운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외로움은, 롤랑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결핍’으로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승자가 없는 경쟁은 세상 가득 불안과 고독을 풀어놓았다. 러시아의 한 작가는 도시를 일러 ‘고독이 만든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이 자랑하는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그의 작품 속에 문명 도시 뉴욕의 우울과 불안을 담아내었다. 한때, 장유정의 회화도 이들과 맥락을 같이 했다. 그는 선인장을 소재 삼아 불안한 내적 자아를 표현하거나 현대인의 고독을 화폭에 풀어놓았다. 그런 그가 네 번째 개인전에서 새로운 작업을 들고 나타났다. 소재는 여전히 ‘선인장’이지만 작품 안에 담긴 스토리는 자못 새롭다.

선인장이 하나의 기호이라면, ‘선인장의 집’인 그의 작품 또한 내적 의미를 품은, (그것이 질문이든 발언이든) 우리가 풀어내야 할 기호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첫 번째와 두 번째 개인전 작업을 되돌아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음과 같은 낱말이 떠오른다. 부재, 격리, 소외, 불안, 고독. 선인장은 어둠 속에 있거나 좁은 방 안에 있었다. 창가에서 겨우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거나 ‘먼 곳에서 돌아온 소녀처럼’ 자신의 내면을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다. 장유정이 세 번째 개인전에 붙인 제목은 <안아주세요>였다. 최근 작업을 보고 뒤늦게 느끼는 것이지만 마치 어른 동화 같은 그의 작업은 일종의 다리였다. 네 번째 개인전 주제인 <이젠 괜찮아>로 가기 위한 통로이자 다리였던 셈이다. 소설 문법으로 표현하면 앞의 두 전시가 ‘기’와 ‘승’이라면 세 번째 전시는 ‘전’으로, 그리고 이번 전시는 ‘결’로 보아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다시 한 번 말해보자. 장유정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이 진술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회화적인 사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그가 새로운 회화적 시도를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어법을 변용하여 말하면 전자는 시니피에(기의, 의미)이고, 후자는 시니피앙(기표, 의미의 외화된 형식)이다. 그러니까 장유정은 변화한 그의 생각과 사유(기의, 시니피에)를 회화라는 형식(기표, 시니피앙)에 담아낸 것이다. 이제, 작업 안으로 들어가 시니피앙을 살펴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니피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화폭에서 선인장이 웃고 있다. 아니, 그렇게 느껴진다. 선인장 둘이 또는 그 이상이 서로 섞이고, 손을 맞잡고, 가지를 팔처럼 뻗어 연인처럼 부둥켜안고, 사랑의 증거인 듯 밝고 화사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불화하기보다는 조화롭고 고독해 보이기보다는 기쁨으로 충만해 보인다. 그뿐이 아니다. 색채는 한층 밝고 자유롭다. 점과 선과 면에는 여유까지 흐른다.

이제 우리는 시니피에에 거의 도달했다. 예술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미적 반응이다. 작가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미학적 대답이 곧 예술인 셈인데, 이 진술에 의지하여 설명하면 장유정은 이미 새로운 미학을 탐구하고 있다. 최근 작업은 불화에서 화해로, 고독과 불안에서 조화와 희망의 세계로 벌써 귀의했음을 스스로 밝히는 고백 같은 것이다. 지금, 장유정은 불화가 아니라 ‘자아’와 ‘타자’가 서로 통섭하며 완결성 (혹은 일원성)을 이루는, 불가능하지만 도달하고 싶은, 화엄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글_유명종(시인, 문화평론가)


만개하는 꽃
90x90cm 장지에 채색 2016
 

암흑 속 일지라도 90x90cm 장지에 채색 2016


그렇게 좋니 65x91cm 장지에 채색 2016


좋은데 안이뻐 73x61cm 장지에 채색


미운데 좋아 53 x 46cm 장지에 채색 2016
 

 작가 경력

장유정 -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회화학과 한국화 전공 졸업

본 전시는 대안공간 눈에서 기획하였으며, 관람료는 없습니다.
전시는 오후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문의 ; 대안공간 눈(031-244-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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