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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청년이 두드리오’

김성호(미술평론가)


I. 신진 작가들의 탄생  

우리는 안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라고 시작되는 이상(李箱)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에 나타난 1930년대 근대인들의 불안한 심리와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간신히 희망을 끈을 붙잡고자 애쓰는 청년 시인 ‘이상’의 바람을 말이다. 대안공간 눈이 매년 기획하는 특별기획전 《13개의 방_Knock》전에는 이상의 시에 드러난 위의 같은 위기적 상황이 오늘날 변주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13인의 아해 대신 13인의 청년이, 도로로 무작정 질주하는 무모함 대신 자신 앞의 방문을 노크하는 조심스러움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상의 13인의 아해들이나 대안공간 눈의 13인의 청년들이나 두렵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들 모두에게는 아직 가지 않은 예술의 미래가 너무 많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II. 13인의 방, 13인의 신진 작가

이번 전시는 수원과 화성 내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 후 선정된 13인의 졸업 예정자들이 대안공간 눈의 초대를 받아 마련된 것이다. 즉 경기대학교, 경희대학교, 수원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협성대학교, 총 6개 미술대학의 졸업 작품전에서 대안공간 눈이 각 과별로 1-2명씩 자체 선정하여 초대한 13인의 참여 작가들은 그런 면에서 올해의 대표적 신진 작가들이라 할 것이다. 졸업 예정자들의 학과가 ‘조형회화학과, 한국화과, 서양화과, 환경조각학과, 도예학과, 아동미술과’ 등으로 다양한 만큼, 이번 전시 출품작들의 조형적 특성들도 무척 다채롭다.

이 전시의 2015년 전시명은 《13개의 방_Knock, Knock, Konck》(2015, 3, 27-4, 23, 대안공간눈, 예술공간봄)으로, 여러 번의 노크를 통해 신진 작가들이 거듭된 도움 요청이나 문의를 시도하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반면에 이번 2016년 전시는 《13개의 방_Konck》(2016. 1, 22-2. 25, 대안공간눈, 예술공간봄)으로 한 번의 노크를 통해 준비된 것들의 마지막 문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요청과 문의를 포함하는 두드림(Knock)이라는 행위는 적극적인 행위이자 두드림에 대한 대상(문)과 주체(문 밖/안의 누군가)의 피드백(문 열기)을 요청하는 예의를 갖춘 행위이다. 따라서 이번 《13개의 방_Konck》전은 추천, 선정된 올해의 신진 작가 13인이 각자 자신의 방에 노크를 하고 방문하는 관객들을 맞이하는 전시이자. 한편으로는 이들 13인이 자신의 방으로부터 세상을 향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특별한 이벤트이기도 할 것이다.  

III. 13인 신진 작가들의 두드림

제1청년의 노크_이한울의 콘서트(The concert) :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세라믹 재질의 투과체의 원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청량한 소리를 낸다. 그것은 나와 너의 아픔의 소리를 함께 나누는 소리이자, 서로를 위무해 주는 치유의 소리이다. 육적 치료와 영혼의 어루만짐이 함께 있는 소리이다. 보라! 음의 파동이 겹쳐지고 공명(共鳴) 현상이 강해지면서 그것은 리듬, 화성, 멜로디를 구성하는 하나의 콘서트가 된다. 유리병 위에 앙증맞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 첫 번째 두드림은 치유의 음악으로 시작된다.

제2청년의 노크_김나영의 동심(童心) : 두 번째의 두드림 역시 세라믹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라믹의 물리적 소리가 아니라 그것의 심적 소리이다. 청량한 과거의 추억이 들려주는 소리이다. 어린 시절 추억은 분명코 작가의 것이나 관객 모두의 것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벗이 되어 주었던 장난감들, 따뜻한 마음을 더욱 예쁘게 만들었던 야생화들의 자태는 동심을 현현시킨다. 그것을 세라믹이라는 재료로부터 가져와 마술을 부리되 작가는 그 심리적 과거의 거리를 더욱 중시하는 듯하다.

제3청년의 노크_김재형의 자각 : 세 번째의 두드림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미래의 사건에 대한 것이다. 자! 이제 미지의 미래로 간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미래이다. 전혀 직접 체험될 수 없는 상태로서 말이다. 보라! 질퍽한 유화의 어두움 속에서 누워 있는 나신을. 그것은 제목처럼 잠일 수도 죽음일 수도 있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작가적 표현이다. 보라! 우리는 언제나 누구누구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을 간접 체험한다. 따라서 모든 이는 그저 죽음을 자각할 따름이다. 죽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 그러나 김재형의 회화는 ‘지금이 우리의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때’라는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는다.  

제4청년의 노크_엄혜림의 시선 : 죽음의 사건 앞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그런데 죽음에 이르기 전 삶의 양태는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이 그녀의 두드림 속에서 나타난다. 혹자는 부유하고 풍족하며 혹자는 가난하고 궁핍하다.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는 낮은 눈높이와 더불어 가장 낮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를 담담하게 실행하는 그녀의 작품은 긴 여백을 남기는 족자 형태와 구석에 배치시킨 인물 형상으로 인해 관객으로 하여금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제5청년의 노크_강윤구의 꿈속의 꿈 : 다섯 번째의 두드림은 꿈속에서 일어난다. 각박한 현실에서 잃어버린 많은 꿈들, 그 열망을 향한 긴급 수혈이 필요하다. 마네킹들에게 수혈되는 여러 색의 물감들은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상징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꿈은 무엇인가? 현대인으로 대변되는 마네킹을 중심으로 설치와 영상이 혼재하는 강윤구의 작품은 우리에게 오늘날 비루한 현실에서 꿈속의 꿈의 세계를 여전히 희망할 수 있게 만든다.

제6청년의 노크_신새람의 산수(山水) 속으로 : 산수는 자연에 대한 동양적 해석이다. 그것은 서구의 풍경과 달리 인간을 하나의 본질 속에 섞는다. 인간은 자연에 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자연의 생태적 회복에 앞장서는 자연 그 자체이다. 신새람의 신(新)산수화는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실천하면서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 그리고 자연 생태적 문제를 다룬다. 예를 들어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흡사한 산수화에 현대적 기물들이 뒤섞인 그것은 과거의 것으로 머문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오늘의 전통의 의미를 되묻고자 하는 것이다.

제7청년의 노크_최진원의 뚠뚠이를 위하여 : 일곱 번째의 두드림은 전통의 재해석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하는데 집중된다. 차용이나 패러디라는 이름으로 서구 전통의 명화를 변조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그녀는 명화에 뚠뚠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가져와 자신의 작품으로 전환시킨다.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 마냥 뚱뚱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가 화면에 가득한 그녀의 작품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을 관객에게 심어 준다. 모든 평범한 것들에게 주인공을 약속하는 셈이다.

제8청년의 노크_정형섭의 무제(untitled) : 재료의 변화와 물성이 야기하는 작품의 속성에 대해서 성찰하는 작업들이다. 뽁뽁이라고 불리는 작품 포장재 혹은 건축 단열재와 더불어 시멘트가 만나 ‘칼 안드레(Carl Andre)’ 식의 미니멀아트를 만드는 작품은 신진의 어설픈 무모함을 넘어선다. 모래로 만드는 한 송이의 꽃은 또 어떠한가? 이내 몸체로부터 부서지고 떨어져 나갈 모래가 전시장 바닥에 구축한 거대한 한 송이의 꽃은 우리에게 임시적 재료에 영원의 미적 가치를 담는 조형적 마술의 힘을 효과적으로 선보인다.

제9청년의 노크_최진아의 기아(hunger) : 아홉 번째의 두드림은 우리의 먼 이웃에 대해 실천된다. 지금은 그들일 따름이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들이 될 수 있다. 기아는 전 인류에게 주어진 문제이다. 보라! 여기 젊은 청년이 조형의 언어로 기아 후원에 동참한다. 꼭 물질이 아니어도 좋다. 내 맘을 나누어 줄 대상으로서의 타자가 주위에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타자들로부터 주체가 되는 과정을 겪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미술의 언어로 이러한 후원에 개념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간혹 미술의 도구화에 휩싸일 위험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현의 대상으로 기아 난민을 시각화하는 것으로부터 다른 고민이 일정 부분 요청될 필요가 있겠다.  

제10청년의 노크_서정원의 회상 : 열 번째의 두드림은 과거로 간다. 과거의 기억들은 사소하고 어리석은 행동조차 진한 추억으로 만든다. 어릴 적 커튼 뒤 숨어서 했던 귀신 놀이, 그림자놀이 그리고 여하한 상상 놀이들. 그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 속으로 깊이깊이 잠입한다. 그래서 작가는 바닥으로부터 생명을 입고 자라나 결코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마법의 커튼을 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다.

제11청년의 노크_오해리의 시선 : 열한 번째 두드림은 동화의 나라에서 일어난다. 의인화된 동물들이 말을 걸어오고 이야기하는 동물의 세계에 관객은 손님으로 초대를 받아 들어간다. 그것은 만화, 동화의 언저리에서 오가고, 작가의 상상력 가득한 세계로부터 세계에서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 만들어진다. 다만 이러한 이미지들이 재기발랄한 한 컷의 그래픽 이미지로 머물게 될 가능성은 없는지 검토하면서 작가는 다양한 조형 언어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제12청년의 노크_김희진의 액자(Frame) : 열두 번째 두드림은 현실 밖 세계에서 일어난다.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들이 인물을 형상화하는 콜라주의 대상으로 프레임 밖으로부터 편입되어 들어온다. 작가의 신체 콜라주. 보라! 그것은 원래 현실이었으나 현재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닌, 즉 초현실의 세계이다. 사실이 작품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와 변한다고 할 때, 인간의 자의식은 또 어떠한가?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면서 작가만의 새로운 자의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김해진의 콜라주 아니 콜라주 평면은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프레임 밖의 초현실의 세계를 지금, 여기에 불러 오는 것이다.

제13청년의 노크_신지수 즐기자(enjoy)! : 마지막 열세 번째 두드림은 비극의 비장한 신화의 세계, 혹은 거꾸로 해피엔딩 동화 속 상상의 세계이다. 금발의 머리칼을 기르며 살 수밖에 없었던 ‘전래 동화’ 속 ‘라푼젤(Rapunzel)’의 비극적 이야기는 왕자를 만나, 마녀의 저주로부터 벗어나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해피엔딩과 즐거움의 순간이 매우 짧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은 즐길만한 시간들이다. 건물 외벽으로 노란색의 비닐 끈을 꼬아 만든 라푼젤의 금색 머리칼을 늘어뜨려 설치한 신지수의 조형 언어는 재치 만점이다. ‘대안공간 눈’과 ‘예술공간 봄’을 잇는 마당 한 가운데 위치한 그녀의 작업이 의미심장한 열세 번째의 노크를 완성한다.

IV. 13인 신진 작가 - 오감도 너머  

이상(李箱)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라는 제목은 1934년 당시의 국내의 암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감도(鳥瞰圖)’의 징표를 부정적으로 바꾸어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 등장하는 13인의 아해는 긴장, 불안, 갈등, 공포 등 자의식 과잉과 해체적 현실의 혼돈을 사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번 《13개의 방_Knock》전에 참여하는 13인의 청년 작가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의 긴장, 불안, 갈등, 공포 등의 문제의식이 여전한 주체들이다.

다만, 조감도를 오감도라는 말로 바꿔치기해서 표현했던 이상의 1930년대의 암울한 전망과 달리 《13개의 방_Knock》전은 전망은, 불안한 면도 없지 않지만, 많은 부분 밝고 낙관적이다.  가히 조감도(鳥瞰圖)라는 긍정적 지표를 넘어서 전망도(展望圖), 미래도(未來圖)라는 말마저 가능해 보인다. 13인의 신진 작가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부디 창작자로서 자신의 미래적 비전을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이러한 미래를 다짐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번 대안공간 눈의 《13개의 방_Knock》전이 향후에도 보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