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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개인전 
<자유공간실험 - Forschung fuer Zwischenraum>전시리뷰
 

공간을 잡아두는 것

최혜미

이지은의 자유공간실험대안공간 눈에서 진행되었다. 작가의 작업을 다루기 전에 우선 전시공간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성은 전통 목조건축의 특성(서까래와 보)과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40년 넘게 주거공간으로 쓰이던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이 공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시장 한 쪽에 있는 바깥 정원이 훤히 보이는 큼직한 유리창이다. ‘유리뉴미디어였던 시절, 이 재료는 공간의 이쪽과 저쪽, 또는 안과 밖을 이어주는 첨단재료로 각광받았다. 그런가하면 출입문 옆에 있는 창틀이 안쪽으로 깊이 패여 있어서 그저 창틀이 아니라 일종의 쇼 윈도우또는 작품을 올려놓는 좌대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창틀과 쇼윈도우-좌대가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대안공간 눈에는 상호 이질적인 공간 요소들을 결합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공간 눈은 이지은의 좀 더 급진적인 자유공간실험이 전개될 공간적 배경으로서 꽤 적절해 보인다.

자유공간실험에서 작가는 기본 재료인 비닐봉지와 석고, 실리콘, 합성수지를 활용하여 갖가지 공간을 가시화(물질화)한다. 그 방식을 설명하자면 바르기’, ‘굳히기’, ‘뚫기’, ‘찢기’, ‘압축하기’, ‘부풀리기등 다양한 용어들이 동원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진행한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파란색 비닐봉지에 바람(공기)을 넣고 그것이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비닐봉지 입구를 묶은 다음 그 위에 붓으로 석고를 덧발랐다. 석고가 굳으면 내부의 비닐을 제거하는 일만 남는다. 다른 사례도 있다. 봉지 크기에 비해 조금 커 보이는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고 봉지 입구를 꽁꽁 묶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러면 봉지 형태는 그 안에 담긴 사물의 형태를 닮게 될 것이다. 이때 석고나 실리콘 등을 사용해 그 형태를 잡아내는 일도 가능하다. 그런가하면 마치 오랜 시간 햇볕을 쬐다 말라버린 작은 열매처럼 쭈글쭈글해진 비닐봉지의 형태를 포착한 작업도 있다. 작업의 결과물은 작게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고 크게는 빵빵하게 부푼 큼지막한 것까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것들은 공간을 잡아두는 것을 조건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지은의 관점에서 보면 비닐봉지는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다. 무엇보다 이 재료로 간단히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 막 구입한 비닐봉지를 손으로 쓱쓱 비빈 다음 한쪽을 잡고 툭툭 털면 만들어지는 공간! 비닐봉지로 몇 초 만에 뚝딱 만든 공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금방 없앨 수 있다. 따라서 비닐봉지는 공간 제작에 관한 한, 다른 견고한 재료들, 즉 합판, 석재, 벽돌, 시멘트 같은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가변적인 재료다. 비닐봉지를 통해 창출된 공간의 일시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즉 비닐봉지에 물건이나 공기를 넣는 일, 곧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그 안에 담긴 것을 꺼내는 일, 곧 공간을 제거하는 일을 전제로 한다. 그 공간은 순간적이고 제한적이다. 그 순간적이고 제한적인 것을 잡아두는 작가의 공간실험은 그래서 다분히 심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소중한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심정과 유사한 것 같다.

작가가 비닐봉지로 만든 자유공간은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아무 것도 없지만 어떤 것이든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촉발시킨 불안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검정색 비닐봉지에 깜짝 놀라거나 심지어 두려움, 불안을 느낀 경험을 상기할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의 근원은 비닐봉지의 부풀어 오른 비정형 형태일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렇게 일시적이며 가변적인 불안한 공간에 대한 관찰은 신체와 신체 사이의 틈에서 시작되었다. 맞잡은 두 손들 사이의 틈, 다리와 다리 사이의 거리, 접혔다 펴지는 관절 사이에서 쉴 틈 없이 순환되는 공간에 집중하던 과거 작가의 관심은 점점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사물 자체로 이동했다. 비닐봉지라는 매체는 그 잠정적 귀결이다. 이러한 전개의 배후에는 불안정한 공간의 정체를 파악하고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나 의지가 자리할 것이다.

이지은의 작업에서 비닐봉지는 공간을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로 붙잡는 매체이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고작 작은 비닐봉지 안에 그 모든 것들을 담을 수있다. 그래서 이 작가에게 비닐봉지는 단순히 내용을 담은 형식이나 재료가 아니라 오히려 내용이 침전된 형식이라 할만하다. 얇고 가벼운 폴리염화비닐로 만들어진 비닐봉지는 그 자체 안과 밖이라는 공간성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비닐봉지로 만든 공간은 구조상 집의 존재양태를 닮았다. 집 역시 안과 밖의 구조를 조건으로 삼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이 작가의 작업에는 집(또는 집의 구조)을 모티프로 삼고 있는 것이 많다. 그 작업들은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던 집의 이중적 성격, 곧 편안한 보금자리, 아늑한 안식처로서의 성격과 존재를 속박하는 폐쇄적인 공간, 감옥으로서의 성격 모두를 가시화하며 공간 자체의 심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가끔은 집의 파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벽이 꺾이는 부분에 45도로 맞물려 있는 몰딩 조각, 고급 저택의 벽면에서 봄직한 대리석무늬 시트, 낡은 집에서 떨어져 나온 철 조각 등의 파편들은 집의 해체, 파괴를 지시하면서 동시에 마음속에서 나마 한 때 그 파편들이 전체의 일부로서 기능했을 어떤 집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지은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언뜻 아기돼지 삼형제가 떠올랐다. 지푸라기, 나무, 벽돌로 만든 집 가운데 벽돌로 만든 셋째 돼지의 집만이 안전한 보금자리 구실을 했다는 이야기는 견고한 집에 대한 이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이야기 자체가 제임스 할리웰이 문자로 옮기기 전에는 구체적인 형태 없이 말에서 말로 전해지던 구전동화였다는 사실이다. 형태 없이 말로만 떠돌던 구전동화가 가장 단단하고 견고한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는 역설, 또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