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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순 개인전 <행궁동, 마지막 소풍> 전시리뷰

 

북수동 274번지 ‘사람에 대한 기록’

노아영

“호기심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니던 나는 오랜 시간, 저마다의 기억을 담고 있는 낡고 허름한 건물 속에, 조그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북수동 274번지’에 주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 떠난 그 곳에서 만난 세 할머니.” (작가 노트 中)

작가는 행궁동의 골목길을 헤매다 우연히 알게 된 북수동 274번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약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이 작업은 그곳에 거주하던 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기록한 것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청자와 화자의 역할로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사라질 공간에 대한 기록에서 출발된 이 작업이 점차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작가가 인물을 사진에 담길 피사체로서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진실 된 관계맺음에 집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일련의 인간적 소통의 과정들을 통해 점차 이루어졌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따라서 필자는 작가의 작업이, 사진이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경계를 넘어, 그것이 촬영되기까지의 과정, 즉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모르던 인물과 인물이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운 지점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그것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알게 되었듯이, 할머니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물이 왜 박카스를 좋아하고, 꽃과 시계를 정돈하는지, 왜 담배와 화투를 그토록 선호하는지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 있다. 작가는 세 할머니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기에 앞서 이러한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진이라는 작은 프레임을 통해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것은 사진을 찍는 행위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게 해준다. 이는 인물을 촬영하기에 앞서 작가가 마음으로 넘어야 했던 산의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사진이라는 매개가 단순히 찍고 찍히는 물리적인 행위를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과 마음을 쏟아야하는 그런 관계맺음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할머니가 건넨 투박한 김치 한 포기에서,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여러 가지 흔적들에서 기록의 가치를 찾았다. 낡고 투박하지만 가치 있는 것, 시간과 시간이 쌓여 새로운 층위를 형성한 것, 사람의 입김이 서려있어 아름답지만 쓸쓸한 풍경 등에 주목한 것이다. 할머니들의 일상은 주로 집안의 내부에서 포착되었다. 소박하게 놓여 진 작은 밥상과 낡고 헤진 벽지 사이로 보이는 작은 꽃병, 할머니의 오랜 이불과 빛바랜 가구 등은 인물이 지나온 시간의 두께를 고스란히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떠난 뒤, 남겨진 집안의 풍경은 그날의 쓸쓸했던 공기와, 상실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벽지 사이로 스며들어온 한낮의 햇빛과 벽의 가장자리에 달린 낡고 허름한 환풍기는 할머니가 떠난 자리와, 곧 사라지게 될 골목의 운명까지도 설명 해주는 듯하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책「밝은 방」에서 사진에 관한 자신의 소견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진 일반의 본질에 도달하는 순간에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어떤 고유한 논리의 형식적 존재론의 길을 따라가는 대신에 나는 나의 욕망이나 슬픔을 보물처럼 간직한 채 멈추었다. (중간 생략) 구경꾼으로서 나는 ‘감정’을 통해서만 사진에 흥미를 느꼈다. 나는 하나의 문제(테마)로서가 아니라 상처로서 사진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보고, 느끼며, 따라서 식별하고 쳐다보며 생각하기 때문이다.”

롤랑바르트의 말처럼 어떤 대상을 향한 그리움, 희망, 절망, 기쁨, 환희, 고독과 같은 인간의 다층적인 감정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이안순 작가의 사진에서처럼 인물의 표정을 통해, 공간에 놓인 사물을 통해, 주변의 광경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혹은 숨겨서는 안 되는 삶의 솔직한 단면이자 어쩌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민낯의 풍경일 것이다. 작가가 북수동 274번지라는 공간에서 인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포착했듯이 우리는 어쩌면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러한 감정을 그토록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행궁동, 마지막 소풍>은 북수동 274번지에 얽힌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사라지고 말 북수동 어느 골목에 대한 기억보다도 그 곳에 거주했던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