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의<회전하는 그림자>展

                                                                                                                               새싹이음 프로젝트
                                                                                                                                     -목명균 평론가

 

날이 밝은지 오래다. 아무개 씨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나하나 열거해 본다. 몇 가지를 추려낸다. 그렇다면 내 모든 마음의 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핑계에 핑계를 더해보아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찜찜한 카테고리가 있다. 불행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억울함보다 나의 잘못으로 초래된 것이 용납되지 않을 때이다. 정녕 나는 잘못 산 것인가. 감정은 땅을 뚫고 내려간다.

그는 사진첩을 꺼내어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분석한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날의 분위기가 나타난다. 사소한 대화들에서부터 사람들의 표정, 기분, 그때의 자신을 떠올린다. 모든 요소들은 어떠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오늘 같은 기분에서 바라보는 사진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동반한다. 어린 시절의 미숙함에서 오는 부끄러움, 잠시 사이가 틀어졌던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부끄러움, 실패한 그날의 패션에 대한 부끄러움, 심지어 내 존재의 부끄러움까지.

사연과 무게의 정도는 다르지만 아무개 씨는 어디에나 흔하게 존재한다. 그중에 김홍희 작가도 포함되는데 그도 앨범을 뒤적인 적이 있다. 그러나 다른 아무개 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중성색을 이용해 복잡한 감정들을 중화시킨다는 것이다. 사진 속에는 추억과 감정 외에도 각자의 많은 습성과 전통, 이념들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컬러의 톤을 낮추어 모든 상황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둔다. 이목구비는 투박한 터치로 분명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뒷모습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 없게끔 하고, 동시에 생각해 보게 한다. 진정한 아무개 씨들이 모인 사진 속에서는 어떠한 추억이나, 그 속에서 오는 감정들이 중화되어 편안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untitled>, oil on canvas, 17.9x25.8cm, 2009

아무개 씨는 깊은 밤 답답한 마음에 산으로 올라갔다. 나올 테면 나와 봐! 인생에 닥칠 어떤 것들에게 인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산짐승에게 인지 소리를 질러댔다. 잠시 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고요함 가운데 눈을 감으니 자신을 감싸고 있는 밤공기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예 흙바닥에 냅다 누워 몸을 맡기기로 했다. 눈을 감으니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이 사실은 이렇게 포근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을까. 아무개 씨는 평안을 느꼈다.

중성색으로 감정을 중화시켰던 김홍희 작가는 이번에는 더 나아가 사람들이 모두 끼고 있는 색안경을 벗겨보기로 했다. 나무의 그림자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려진 본질을 유추하게 하는 것이다. 별안간 색안경이 없는 어두운 본질 속에서 나를 깨닫고, 나를 받아들이고, 나와 화해하는 순간이 이루어졌다. 본질과 본질이 만날 때 세상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때 느껴진 찌르륵 거리는 풀벌레 소리와 자신을 훑으며 이동하는 공기의 흐름을 꾸물거리는 그림자의 형태로 그려냈다. 유화물감의 특성으로 축축한 밤의 숲을 표현했다.

<회전하는 그림자 shifting shadows>, oil on canvas, 72.7x90.9cm, 2017

여전히 다양한 감정 속에서 시달리는 수많은 아무개 씨들 중 한 명인 김홍희 작가는 지금도 자연을 걷는다.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나를 에워싼 성벽에 사소한 장애물 하나가 끼어들어 와르르 무너질 때, 불평이 샘솟을 때, 그림조차 그려낼 수 없을 때 길로 나가 작은 풀을 보고, 햇빛을 받고, 흙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곤 풍경의 표면을 훼손되지 않을 그림자로 드로잉 한다. 나를 떠나 회전하는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을 온전한 그들. 작가는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게 된다.

김홍희 작가는 보이는 것을 부정할 때 볼 수 있음을 그림자로 보여주었다. 그는 새로워진 나의 내부와 그렇게 밝아진 눈이 사소하게 여기며 지나치던 작은 것들을 아름답게 보게 한다고 말한다. 나의 못난 내면에 붙어서 캐고 캐내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의 회화가 아무개 씨들을 돕는 도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또 한 명의 아무개 씨는 날이 밝으면 산책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