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기공관>展

                                                                                                                               새싹이음 프로젝트
                                                                                                                                     -목명균 평론가

 

 너와 나는 손을 잡고 있다. 우리는 걷는다. 아직은 해가 지기 전이다. 식당에 들어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온다. 해는 넘어가고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간다. 불빛처럼 사람들은 활기차다. 여름밤의 온도가 걷기에 쾌적하다. 너와 나는 손을 잡고 다시 걷는다. 시간이 갈수록 아쉬워진다. 지하철 몇 정거장을 오래도록 걷는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초조해진다. 너와 나는 손을 놓지 않고 조금 더, 조금 더 걷는다.

헤어짐이 애틋하여 계속해서 걷던 길은 흑백의 신비로운 공간이 되었다. 우리의 배경이 컬러일 필요는 없었다. 너와 나는 그 길과 시간이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 띠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되길 바랐다. 흑백의 뫼비우스 띠.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의미했다. 손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으로 너와 나는 걷고 걸었다.

part_1,종이에 연필,27.5x22cm,2017

 

가슴을 태우던 초조함과 아쉬움, 갈급함을 잊은 너 없는 나는 임지연의 그림 앞에 서서 흑백의 뫼비우스 띠를 보았고, 그 안에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어린 그들을 찾았다. 길은 자유를 찾고 누리기에 충분히 길고 복잡해 보였으며, 화면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림 속에서는 해가 지지 않을 분위기다. 묘하게도 나는 작가가 그린 낯설어야 할 풍경에서 그렇게 쏘다니던 종로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이 빽빽한 길속에서 자유를 느꼈던 것일까?

작가는 손을 잡고 걷던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출산했다. 행복했으나 바빴다. 나를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육아에 몸이 지치기도 했다.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더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머릿속에 그려보는 나의 자유로웠던 시간. 그것은 뉴욕에서의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그려본다.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던 이국의 건물들이 성을 이루어 쌓이고, 작가는 그곳을 걸어 다닌다. 햇살과 냄새도 그대로다. 눈을 뜨니 뫼비우스의 띠이길 바랐던 공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벌떡 일어나 연필을 들고 종이에 그려나간다. 걷고 걸었던 그때처럼 정처 없이, 멈추지 않고, 그리고 그려나간다. 나의 자유로웠던 기억, 공간. 그것들에 얽힌 모든 관계들을.

untitled, 종이에 연필과 먹,27.5x22cm,2017

 

그것들은 작가의 손에서 구불구불 끊이지 않고 퍼져나가다 종내에는 꽃처럼 피어버린다. 상념들은 먹물 속으로 점차 가라앉는다. 작가는 달콤한 자유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다. 공간 속에서 걷고 걷다가 헤엄을 치며 부유해버린다. 어린 날의 우리도 참여해 본다. 걸으며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정신력으로 잊고 있던 다리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 한결 편안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언제나 돌아가야 할 곳이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눈을 뜨고, 나는 우리에서 나로 돌아와 그림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본다.

작가는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걷기를 청하고 있다. 그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어린 날의 걷고 걷던 나를 만나게 된 나는 옆 사람의 기시감이 궁금해진다. 당신도 걸었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자유는 갈급하여 찾아 헤맬 때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 않느냐고 의미 있는 표정으로 툭 내뱉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