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현<오늘의 밥>展

                                                                                                                               새싹이음 프로젝트
                                                                                                                                     -목명균 평론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게 누구이든 간에 연민을 불러일으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강도를 좀 더 높여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의 뒷모습 보기를 권하고 싶다.

대학로 솜사탕 아저씨는 근처 건물 입구에 쪼그려 앉아 음식을 냄비째 놓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곧바로 코끝이 찡해졌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나 마음이 아파서 따돌림 받는 아이와 함께 밥을 먹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쓸데없이 정 많은 사람의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혼자 먹는 밥은 도대체 왜 그리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혼자인 것과는 별개로 쓸쓸하고 초라한 이유가 아닐까?

요즘은 먹는 환경을 카메라로 찍어 드러내는 시대다. 그것은 재력, 여유, 인간관계 등을 포함한 나의 세계를 포장하고 과시하기 위함인데 초라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반갑게도 이 쓸데없이 정 많은 필자와 같은 시선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가 있다. 임동현 작가는 카메라가 비껴가는, 살기 위해 먹는 밥상에 집중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일용직 근로자들을 인터뷰하고 느낀 감정을 그림과 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속 식사시간에는 웃음이나 이야기가 없다. 그저 묵묵히 씹고 삼킨다. 밥을 먹는 주체는 일터에 배경처럼 붙박여 있다. 심미적 즐거움도 당연히 없다. 일터는 신문지가 깔리면서 순식간에 밥상이 되고, 순식간에 다시 일터가 된다. 밥그릇과 국그릇, 종지, 접시 등을 대신해 언제고 쉽게 꺼내고 넣을 수 있는 밀폐용기만이 사용된다. 밥을 먹는 주체는 일!!! 이라고 외치며 모니터에 노랗게 붙어 있는 포스트잇보다 하위의 개념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근로자를 감시하고 옥죄인다. 사람은 주변과 같은 흑백이지만 생존만을 위한 그릇은 컬러로 그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은 사물이 되고, 컬러는 이렇게 슬픈 색이 되어버린다.

사람은 날 때부터 상처를 안고 태어난다. 몸의 상처, 상실감, 외로움, 절망감, 허무함 등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도 불쑥 밀고 들어온다. 그것은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지만, 감정을 배제한 체 살기 위해 최소한의 것을 먹는 상황에서도 느껴진다. 밥을 먹는 초라한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상처 속에서도 그 밥을 먹어야만 하는 굴레, 굴욕, 해결 할 수 없는 나약함 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들의 상처를 목탄이라는 거친 재료로 표현했다. 이어서 그것은 표면을 긁어내는 행위로, 목판화의 특징인 칼자국으로 확대되었다. 밥을 먹는 사람의 얼굴, 환경, 손까지 모두 상처투성이다. 컬러로 그려진 생존그릇 또한 상처를 면하진 못한다.

작가는 애잔한 밥을 먹는 사람들과 섞이고 공감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자신 또한 위로 받는다. 그는 가짜 세상 속 음식을 먹는 이들에게도 말을 건다. 가짜 세상 또한 상처이기 때문에 너의 밥상은 행복하냐고 정 많은 오지랖을 부린다. 우리의 관계가 스테이크와 편의점 도시락처럼 다른 관계처럼 보일지라도 상처에 대해 함께 느껴보기를 권한다. 그것은 언젠가 필요할 온기가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