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시대, 일용할 양식의 저주를 상기하다>
- 임동현 작가의 <오늘의 밥>에 대한 소고 -

                                                                                                                               새싹이음 프로젝트
                                                                                                                                     -마틴 배런 평론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어릴 적 교회를 다녔던 나는 일요일 늦잠을 자고 헐레벌떡 그곳으로 뛰어갔기 때문에 아침을 거르고 배고픈 예배를 치러야 했던 기억이 많다. 그래서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며 저 빌어먹을 일용할 양식을 내뱉을 즈음이면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얼른 식당으로 달려가서 각 구역에서 집사님들이 돌아가며 준비해오는 교회 밥을 첫 끼로 먹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시장이 반찬이었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자마자 먹었던 공짜점심 – 물론 나는 거의 헌금을 5천원에서 만원은 냈다. 거기서 목사님 월급을 비롯, 이것저것 나갔겠지만 –은 대체로 맛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교회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 살아 돌아오는 감각의 기억은 3층 예배당에서 2층으로 내려갈 때 철계단의 텅텅거리는 소리와 어느 구역에서 준비해 와도 늘 있었던 반찬 무생채다. 지금도 인터넷에 무생채를 검색하면 무생채~ 쉽고 맛있는 무요리라는 블로그가 바로 뜨고, 그것이 장내 소화를 돕고 해독 작용을 하며 비빔밥이나 냉면 등에서도 중요한 고명 역할을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나에겐 항상 이곳이 가난한 동네임을 입증하기 위한 오브제 같았다. 그래서 그 노골적인 무 내음이 싫었고, 그나마 평소에는 그 무요리를 하지 않는 어머니께 감사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군대를 가기 전 마지막 식사 –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과장되게 많이도 사주셨다
. 이건 이쯤에서 얄팍하게 비유할 수 있는 최후의 만찬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 를 함께 했던 작은 아버지는 시간 금방 갈 거야.”라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시간 정말 안 갈 거야. 그래도 참아.”라며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해방감이 느껴졌고 오히려 그 말씀이 버티는 데 큰 힘이 되었기에, 그렇게 참다보니 말년이 되고 전역 날 아침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는 이어서 오늘 이렇게 많이 차려준 이유도, 군대 가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상하게 그곳 밥은 돌아서면 금방 꺼져서 배고프기 때문이야. 아마 쌀이 좀 저질이어서 그런 거이기도 할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운 좋게도 내가 있었던 곳은 병장 시절 열심히 운동하지 않으면 살이 잘 찔 정도로 밥이 잘 나왔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침마다 – 전역 날 아침까지도! - 참아야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콩자반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소위 짬밥이 안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항상 한 국자씩 의무적으로 퍼 먹어야 했으니 말 할 것도 없고, 짬이 좀 차서도 – 고참 혹은 선임이 되어서도라고 순화해야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내 글이니까 오랜만에 추억이 돋아 이렇게 써본다. 그리고 군대 얘길 해서 아까부터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생각도 물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이란 생각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니 양해를 구한다. - 먹지 않아도 될 권한의 확보와는 별개로 그 흥건한 바퀴벌레 모음 같은 흉물스러운 모습에 짜증나는 냄새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콩자반은 영양이고 지랄이고 그저 싫었다. 그리고 앞의 교회 얘기랑 결국은 같은 얘긴데, 여기서도 당시 내가 군바리’ - ‘바리가 거지라는 뜻이란 걸 그 때쯤 처음 알았다. - 라는 걸 실감하게 만드는 가장 상징적인 메뉴가 콩자반이었기 때문에 난 그걸 벌레들로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전역과 동시에 나는 다시
짬 찌끄래기가 되었다. 다행히 변변한 직업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 희생은 대개 밥을 먹는 형태로 고스란히 자기 확인되었다. 참 이상한 것이 의식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 게 분명한 것 같은데, 내게 과시소비적으로 돈을 많이 쓰는 순서는 의식주의 순서대로 로 먼저 갔다. 좋은 것을 먹으려는 욕망은 입는 것에서 좀 해결이 된 다음에 시도되었다. 어쩌면 어렸을 적 가난했지만 업계에서 아주 유명했던 호텔리어 아버지 슬하에 있던 덕에 좋은 건 공짜로 질리도록 많이 먹고 다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먹는 게 계급적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는 줄 잘 몰랐던 것도 있다. 10대 후반은 입시로 바빴고, 20대는 나를 찾느라 바빴지 뭘 먹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몰랐다. 그리고 그 때는 솔직히 삼각김밥이 그렇게 비참한 음식으로 우리 세대에게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재밌게 생긴 간식이었다.

 그러다가 내 다음 세대들이 삼각김밥을 많이 먹는 자신들을 아주 슬프게 생각하고 있는 걸 얘기하기에 그걸 듣고 알았다
. 그리고 취업이 점점 안 되어 노량진에 몰린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게 컵밥이란 걸 알고 어지러워졌다. 그러더니 그 사람의 식당 앞을 밟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 없다는 백종원이 TV에 나와 설탕요정이 되었고,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특급 소스를 만들어주며 전 쉐프 아니에유. 요리 연구가지.”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이태원의 고급 레스토랑의 스타 최현석 쉐프는 까만 앞치마를 두르는 게 수술 집도의의 가운 입는 모습만큼 강렬한 환타지를 줄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며 안 그래도 큰 키에 손을 높이 올려 소금을 뿌려댔다. 그 모습은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제주도의 정방폭포보다 멋있었고, 그 맛은 보지 않아도 쏘 딜리셔스임이 분명했으며, 그와 톰과 제리를 이루는 오세득 쉐프와 함께 유럽과 아시아 등을 여행하며 요리 이외의 많은 현란함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난 그들을 무척 좋아해왔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가 뿌린 소금이 아직 아물지 않은 계급이라는 상처 위에 뿌려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히 이번에 임동현 작가의
<오늘의 밥>을 만나고 나서 그 흔한 소재에 대한 환기가 주는 새삼스러움은 보통 이상이었다. 그래서 아마 아티스트 토크 때 가장 많은 질문을 했고, 거기서 나눈 세세한 것들은 이 급한 글에는 굳이 지금 넣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나눈 아티스트 토크는 메모하지 않았고, 음성녹음도 아직 다운받지 못했다. 비 오던 날 배달하는 사람의 뒷모습에 대한 슬픈 감상도, 노란 포스트잇도 여기서는 굳이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목판화는 아무래도 가장 오래된 판화형식인데, 그에 대한 궁금증도 아직 그대로 가지고만 있다. 다만 이 글을 쓰기 전에 임동현 작가님께 전화를 걸어 한 번의 대화를 더 하였는데, 나 역시 이 부분에 겹치는 소재와 주제의식을 천착해가고 있는 – 나는 도시락 밑판을 모으고 있다. 설거지도 하며 깨끗이 모으고 있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유화로 그려진 까만 바탕에 노란 물결무늬를 봤을 때엔 저게 어떤 편의점 브랜드의 어떤 메뉴 도시락의 밑판인지 대번에 알았다. 가격도 알 것 같았다. 3900원짜리였던 것 같다. 특히 MSG맛 많이 나는... - 동료 작가로서 2인전을 제안할 정도로 내가 그의 세계에 공감하는 바는 사실 남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아티스트 토크 때 첫 질문이 제목은 무척 중요한 것이라는 공통의 관점에서, 작가님의 그림 제목들을 문법적으로 봤을 때엔 어두운 밥과 같이 형용사+명사형처럼 정합적인 제목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거리 밥’, ‘모니터 밥’, ‘신문 밥과 같이 명사+명사형도 있는데 이건 일반적인 결합이 아니다. 중간에 쉼표조차 없는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던 데 대한 대답을 얻었다. 그 날은 정신이 좀 없는 가운데 전달이 잘못 되었는지 작가님이 그 소외된 일상의 밥에 대한 총론을 계속 이어나가셨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그걸(쉼표를) 찍을 만큼의 여유도 없는 밥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교회 얘길 하면서도 쓴
, 참으로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래 우린 정말이지 빌어먹기도 한. 내가 하는 이 글쓰기란 것도 물론 제일 먼저는 나의 실존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먹고 사는 한 방편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 뿌리는 위로 뻗어서는 나름 탄탄한 줄기가 되고 잎이 되고 열매가 되기도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아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 채 땅 속에서 구렁이처럼 기어가다 다른 뿌리와 만나 엉키고 낑낑대기도 한다. 참 소득이 없는, 그래 빌어먹지 조차 못하는 상황이 되고 불필요한 자존심끼리의 씨름을 벌이다 오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새 직장에 취업을 한 여자친구는 요즘 신이 났다.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공짜 점심을 거의 매일 찍어 보낸다. 딱 봐도 잘 나오는 밥상이다. 어느 날은 아기자기하게 수제버거도 나온다. 나는 하루는 수평수직 잘 맞춰서 매일 잘 찍어두라고 했다가, 하루는 거기에 공짜 점심이 어딨냐고 프리드먼의 경구를 빌어 그러니 행복한 직장이라고 속지 말고 늘 긴장하라며 꼰대짓도 해버렸다. 그만큼 밥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면서 상징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중적이다. 정신분열증적인 무엇이다. 포스트모던적인 일상의 오브제다. 3년 전에 취업한 지인들은 더 이상 어떤 밥을 먹는지 얘기하지 않는다. 최초 1년 동안은 하지 않았던 회사 욕을 많이 한다. 그리고 자신도 밥보다는 질투와 욕과 헛된 욕망을 더 많이 먹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 또 어떤 이들의 인스타그램은 #먹스타그램 으로 힐링 받고 있다. 그곳에선 영원히 그 고급 요리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는 듯하다.

 파트리스 보네위츠Patrice Bonnewitz는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문경자 역, 동문선, 2000)을 통해 부르디외P. Bourdieu아비투스각각의 계층이 생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영구적이면서 동시에 변동 가능한 성향체계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부터 받게 된 일용할 양식의 저주가 작용해 온 실체가 아닐까 싶다. ‘먹고 살 만 한’, 딱 적당한 만큼을 우리는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되도록 할 수 있는 한 노력한다. 좀 더 좋은 의식주를 갖기 위해 평생을 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이미 허락되어 있었고, 그 삶의 모습 – 전문 용어로 때깔– 은 영구적이라 할 만하다. 나는 왜 그렇게 사람들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좋아하고, 공자의 중용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영구적이면서 동시에뒤에 달려 있는 저 변동 가능한이 아주 만만해서인가? 그래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인정할 사람은 인정하고, 나는 좀만 노력하면 좋은 밥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악착 같이 사는 모습들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던데...

 그 뿐이랴. 우린 성공한 작가 김훈이 <라면을 끓이며>를 내면 그의 철학과 글내음을 맛보기 전에 먼저 "이 분이 라면도 끓이시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이내 자전거와 라면은 어울릴 수 있다고 조정한다. 그리고 잠시 그의 자전거는 얼마일지 궁금해하다가 그가 라면 말고 어떤 좋은 요리를 소개하진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긴다. 이렇듯 어떤 음식은 어떤 주체에게 단순한 요깃거리가 아니며, 거기서 사용 언어의 계층별 분화도 모두 연결된다. ‘식대라는 말을 주로 쓰는 사람들이 샤또로 시작하는 말을 쓸 일이 거의 없고, 그들의 냉장고에는 캐비어와 샤프란이 있을 리 없다. 그걸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주는 자리가 <jtbc>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자의 아비투스는 냉장고 층층이에 이 사람은 지금 몇 층쯤에 있다!”고 판정해주듯 쏙쏙 들어차있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자취 15년차 배우의 작고 허름한 – 분명 처음엔 백색가전이었을 텐데 이젠 황색가전이 된 – 냉장고엔 여전히 2천 원짜리 어묵이 들어있고, 학력위조 하고도 연예계 내 자기 사단의 위세를 자랑하며 잘 살고 있는 한 방송인은 양문형을 열고 스크린도어를 또 열어야 하는 메탈 소재 눈부신 최신식 냉장고를 열어 제치면서도 위세를 떤다. 그 눈빛은 마치 너흰 절대로 나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없어.”라고 포효하는 듯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참으로 빌어먹을 저 놈의 계급의식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TV의 대리만족 매커니즘은 재밌다 못해 무섭다. 어쩌면 우린 평생 캐비어와 샤프란을 입과 혀와 식도와 창자로는 못 먹을지언정 눈과 귀와 코로는 먹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선언했는지도 모른다. 2015610일자 <경향신문>문화비평코너에는 먹방과 쿡방... ‘음식 이상을 먹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의 예능과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가로지르며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와, 다양한 요리와 조리의 방식에 관한 재현작업들이 새로운 대세로 확립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상 속에서 낯익은 음식을 스타와 예능인들이 직접 체험의 일부로 만들어내고,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군말 없이 수행하기도 한다. 나아가 전문가 집단이 이국적인 레시피(recipe)를 소개하거나, 이들이 수행하는 요리를 둘러싼 치열하고 흥미로운 경연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과거에는 대중문화의 전면에 크게 등장하지 않던 셰프들이 새로운 스타군으로 속속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고 있다. 대중은 스타일과 미각이 발현되는 음식에 열광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일련의 음식의 향연을 접하며, 특히 고단하고 분주하게 내몰리는 삶 속에서 일정한 위안과 더불어 공유되는 체험을 나눈다.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에 떠는 취업 준비생도, 부쩍 늘어난 1인 가구의 주체도, 가족을 위한 먹거리로 고민하는 맞벌이 주부도 이 과정에 공통적으로 참여한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으로는 10만 원짜리 먹방을 먹고 쪼르륵 1층 편의점으로 내려가 통신사 5~10% 할인을 받아 입으로는 3960원짜리 도시락을 먹는다. 솔직히 백종원이 싹 바꿔놨다는 CU 도시락이 뭐가 괜찮아졌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특히 그 방망이 소세지 두 토막은 진열대에서 우릴 올려다보며 야 이 찌끄레기들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임동현 작가의 오늘의 밥을 감상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작가는 지난 520일에 있었던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감상자의 몫이라는 전제를 붙이기는 했지만, “어쩌다 한 번 먹어본 사람이 요즘 편의점 도시락 잘 나온다고 말하는 건 좀 다른 차원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저 사치고 자기위안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공감은커녕 이해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1차원적 감정이라는 점을 일찍이 수전 손택은 못박아두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공감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으로서 매일을 그렇게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그건 말도 안 된다. 다만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그림들은 적어도 TV ‘먹방프로그램들보다는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조금이나마 사회를 평등한 조건으로 되돌려놓도록 하는 채널일 것이다.

 임동현 작가는 통화를 통해서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대안공간 눈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작가노트 – 그 글은 사물의 시대로 시작한다. 그게 확 와 닿았다. 그게 이미 끝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 글의 제목으로서 임 작가님에게 빚을 졌다. - 말미를 보면 보이지 않는 곳, 시선 받지 못한 곳에서 먹는 끼니를 드러내어 그들의 존재를 담아내는 것이 내 삶의 입증이다.<>”이라고 되어 있다. 보통 팩스 공문 마지막에 <>이 붙어 있는데, 이건 그런 행정적인 <>은 아닌 것 같고, 정말 작가는 지금까지든 앞으로든 그의 그림이 그러한 목적을 향해간다는 것으로 더 구구절절 설명은 필요 없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다른 경력에 대해서도 굳이 묻고 선입견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작가를 더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물어봤을 때 그의 진정성은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게 글 쓰는 사람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나는 아직 믿는다. 따라서 이 글은 너무나 시간에 쫓겨 썼기 때문에 훗날 작가를 제대로 만나 인터뷰를 한 뒤 보강할 생각이다. 지금은 작가와의 통화를 통해 이 시리즈를 작업할 때쯤의 심정이 담겨있는 글이라고 소개한 – 작가는 전시장에 부착해놓은 QR코드를 통해서도 이 블로그 글로 접속할 수 있게 해두었었다 - “지난 봄날의 기억”(20172210229분 게재)을 옮겨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은 글의 일단락을 해두려 한다.

지난여름 나는
봄 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던 꽃잎들이 몇 달이 지나 외면 받는 것을 보았다
.

시선의 중심에서 도로의 주변으로 밀려난 꽃잎을 더 이상 사람들은 찬미하지 않는다
.
불과 몇 달 사이에 꽃잎은 그렇게 지워졌다.


그 지워졌던 꽃잎의 과정을 기억하는
나는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꽃잎의 운명을 잘 기억하고 있기에
, 완연한 봄날이 찾아와도 난 꽃잎 속에서 사진찍지 않을 것이다.

말 없는 꽃잎이지만 사진으로 말을 걸었다가 몇 달만에 쓸어져버리는

그런 급락의 경험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

지난여름 버려진 꽃잎을 그렸고 거리에 뒹구는 꽃잎을 캔버스로 옮겨 붙였다
.
동료 같았기 때문이다
.

새로운 여름이 오면 그 꽃잎을 보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