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그 끝나지 않을 메리트>
양반김의 《삽질의 무게》展

                                                                                                                                                 
                                                                                                   -전유정(대안공간 눈 인턴 큐레이터)

 

 

없는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게 젊음이라네 난

2011년에 발매된 옥상달빛의 노래 <없는게 메리트>에서 두 명의 싱어송 라이터는 갖고 있는 유일한 젊음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허나 젊음이 가장 값싼 이 시대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이른바 캔디형 인물은 촌스러운 인물로 전락한지 오래다. 단 한번뿐인 인생을 탕진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두고 살아가는 욜로(YOLO)족의 등장과 허무주의의 만연은 이 탕진된 젊음의 가치 앞에 당연한 수순이다. 작고 조잡한 것을 의미하던 키치(Kitsch)마저 있는 자의 부의 상징이 되어 거래되고 거대한 덩치로 위협을 가하는 시대다.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이 가치의 롤러코스터에서 종이배를 타고 거짓의 바다를 헤엄치는 이들이 있다. 같은 학교를 나와 2013년부터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동희와 양진영은 이미 넘쳐나는 이미지에 어떤 텍스트를 덧붙이거나 해석을 가하여 성찰을 건네는 것 보다 날것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아티스트 그룹 양반김으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두 작가의 작업의 소재는 매우 간단하다. 신문지, 상자, 비닐봉투, 뻥튀기. 작은 입김에라도 저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가벼운 소재들은 쉽게 그 덩치를 키운다. 부피와 질량은 비례하지 않지만, 응당 커다란 부피에 기대하는 묵직한 무게감을 거부한 채 자기만의 방을 가득 메운 이 전시의 제목은 삽질의 무게이다. 삽질이란, 속히 쓸데없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쓸데없는일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가치에서는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의미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생산적 활동이란, 경제적인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일들로도 대체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보라! 이미 숱한 책에서 인간의 노동을 고발하는 내용이 넘쳐나고 있으며 때로는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이유로 현대의 노동을 비꼬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의 본성에 위반되는 활동이 삶의 필수요소가 된 지금,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이미 사치다. 최근 개봉한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의 소재였던 불교의 7개 지옥에는 나태지옥이 있다. 그 많고 많은 죄악 중에 하필 나태함을 큰 죄로 여긴다는 것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 나태한 것은 죄악인가. 혹 나태하지 않아야만 도태되지 않는다고 답한다면, 이미 많은 청년들은 노동과 지위를 거부하고 기꺼이 가장 사치스럽게 젊음을 소비하고 있는 지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 이때 소비란 낭비라 할 수 없다. 실로 없는 것이 메리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양진영. 김동희는 자신들의 이름 대신에 양씨, 김씨가 되어 아티스트 그룹을 이뤘다. 얼핏 아티스트 그룹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먹는 김 양반김을 떠올리거나, 세 글자의 이름을 갖고 태어나는 한국인 아무개의 재미있는 필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 재미있게도 쌍둥이처럼 똑 닮은 두 작가의 작업을 예측하기 좋다. 2014, 성복동 살구에서 진행했던 양반김의 퍼포먼스 설치 작업인 <노란국물>에서 두 작가는 어제 잠을 잘못 잤더니 목이 돌아가 버렸어요라는 슬로건답게 노란 가발로 얼굴을 가리고 같은 의상을 입어 누가 인지 인지 구별이 어렵다. 그러나 그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들의 정체성은 일상적 소재와 풍자를 통해 재미있는 해학과 유희를 제공함과 동시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철저히 외적인 코드에 기대어 가장 흔하고 편하게 소비되는 이미지로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혹여나 누군가 오해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들은 그저 허공을 담는 파란 봉투로 파도를 만들고 거짓처럼 하고 터져 부피를 키운 뻥튀기들을 모아 가치의 바다를 헤엄친다. 이때 이 두 작가들은 양반김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떠올리며 예술적 행동을 반복한다.

2013년 아티스트런스페이스 413에서 진행한 작업 <BOXXBOX>에서는 전시장 전체를 뒤덮을 때 까지 상자를 붙이고 또 붙였으며, 다시 이 공들여 붙인 작업들은 떼어내고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영상을 만듦으로서 이들 작가는 고단한 예술가의 행동을 반복한다. 전시장의 크기가 커질수록 이들의 작업 시간은 길어지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면 2014년에 진행된 <옥상의 정치>처럼 버려진 현수막을 모으고 널고 끊임없이 이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들 작가들의 예술적 행동을 편히 부르는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떤 목적성을 띄고 있으며 계속해서 반복되는 행위를 일컫는 말, ‘예술 노동’. 흔히 노동은 대가 또는 목적 있는 행동을 일컬으나, 이들에게 예술만이 진정 목적이라면 이야말로 노동이 아니겠는가?

이번 전시 삽질의 무게도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2016년 한 해 동안 작업 활동을 하지 못한 두 작가는 그 공백의 시간동안 을 했다. 예술이 아닌 다른 일들을 통해 그들은 소위 말하는 밥값을 벌었던 것이다. 그 시간동안 양반김은 많은 이들이 질문하는 예술, 그게 밥이 돼?’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질문이지 않은가. 밥을 싸먹기 위한 반찬인 양반김을 이름으로 둔 두 아티스트에게 밥을 묻다니! 그렇다면 이 두 작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들은 이 공허한 질문으로 가득 찬 파도위에 예술의 무게를 재기위해 밥을 가득 담은 공기 하나를 올릴 저울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밥값의 무게를 쟀다! 당연히도 그 무게는 1kg은커녕 저울의 눈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이 미세한 움직임을 위해 많은 이들이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포기하며 살고 있다. 돈의 가치에 대한 심판을 끊임없이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지하고 깊은 철학적 사유 이전에 성급히 결론을 내리고 싶다. 적어도 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라고.

두 작가는 어김없이 작업이 진행될 때에는 끊임없이 노동할 것이다. 이 노동은 돈도, 지위도,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한 것도 아닌 그저 유쾌한 시간들을 위한 예술을 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삽질을 계속할 것이다. 관점에 따라 그들의 행동 모두가 삽질로 보일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예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삽질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이들 삽질의 무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위로 떠오를 수 있을 만큼 가벼우니 말이다. 실로 없으니, 메리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