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프로젝트 지브라_part2. 홍혜란

                                                                                          프로젝트 지브라_평론가를 꿈꾸는 대학생
                                                                                                                                           -김윤태

 

Mixed media, oil on canvas, silkscreen on paper 총 세 가지의 방법으로 제작한 작품을 들고 Project ZEBRA에 참여한 홍예란 작가는 집을 소재로 작업을 했다. 집이라고 하면 미적인 대상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분류된다. 소득분위가 높을수록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분야에 돈을 쓰듯이 인간의 미적 감각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집을 고를 때 사람들은 그 집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닌 집의 크기, 편한 동선, 방의 개수 등 실용적인 부분을 더 크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지만 그 이상의 미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혜란 작가는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것을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집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나라의 집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같은 문화권의 나라라고 해도 전통가옥이나 예전에 지어진 집들은 각 나라마다 생김새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을 작가는 말레이시아 건축봉사를 다녀와서 느끼게 되었고 그것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작가의 작품 중 <Marine plants1>부터 <Marine plants5>까지 서로 다른 화구를 이용해 집과 해초를 겹쳐서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들에 등장하는 집들은 다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집들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해초를 통해 이 집들이 다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의 소재로 익숙한 것을 생소하게 함으로써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과 모순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해초의 색과 겹쳐있는 집의 색이 절묘하게 맞아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배치인지 실제로 외관에 해초가 그려진 집이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잘 표현했다. <내 안의>, <떠 있는> 작품 시리즈 또한 말레이시아에서 보고 온 집에 대한 그림이다. 작가는 단지 예뻐서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작가의 무의식중에 새로운 문화 속에 있는 낮선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집을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노인정><제주도>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정>은 작가의 그림 속에서도 아주 평범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은 주위의 모습으로 인해 아주 쓸쓸한 모습으로 변한다. 노인정 뒤로 보이는 화면에 모두 들어오지도 않은 높은 빌딩, 노인정의 양옆에 있는 잎 하나 없는 두 그루의 나무, 노인정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나무 같은 풀들로 인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인정의 모습이 더욱더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노인정은 주위의 그 어떤 것보다 밝은 색을 가지고 있다. 이 모습은 작가가 노인정에 대한 위로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재주도><노인정>과는 다르게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을 했다. 지붕의 빨강색은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이 그림의 빨강지붕은 그저 강조와 대비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깨닫게 된다. 또한 돌담을 보고 있으면 1930년대에 활동했던 오지호 작가와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오지호의 <남향집>의 돌담과 돌계단은 정갈한 모습이지만 홍혜란 작가의 <제주도>의 돌담길은 그랭이법을 이용한 쌓기 방식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돌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색채의 표현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두 작가 모두 한 가지의 색이 아닌 다른 색들을 중간에 조금씩 사용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작가는 살아가는 공간에 미적인 가치를 투영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물론 새로운 문화권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이지만 <노인정><제주도>를 소재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다시 말해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익숙한 것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작가 자신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소재에 상관없이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표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표현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