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프로젝트 지브라_part1. 김나현
<나아가는 길>

                                                                                            프로젝트 지브라_평론가를 꿈꾸는 대학생
                                                                                                                                             -정민철

 

 

우리의 눈은 평생 동안 많은 것들을 담았다가 덜어 냈다가를 반복한다.

인간은 바다, , 태양, 사막 등 자연의 모습을 오랫동안 봐왔다. 광활한 사막을 통해서 압도당하기도 하고, 끝없는 것처럼 보이는 바다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며,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은 어떠한 설명 없이 아름답다는 말 하나로 충분해 보인다. 이제는 사진 등을 통해서 실제로 볼 수 없는 자연의 모습까지 우리의 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지만, 나의 시선으로 직접 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기까지 이전에 많은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지역, 문화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구름의 모습을 사진에 담음과 동시에 자신만의 감성을 집어넣는데 성공한 작품의 등장은 사진이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 없이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반대로 사진을 통해서 날 것 그대로의 대상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가의 감성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프레임 속에 갇혀진 자연을 보게 된다. 자연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사진을 통해서 보는 자연과는 최초의 접근 자체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행위, 눈에 무엇인가를 담는 행위, 나아가서 보는 것만이 아닌 귀로 듣고, 냄새를 흡수하는 등 우리가 느낀다고 하는 것의 일련의 과정 자체에 주목하기 위해서 자연을 통해 시작했다. 또한 인간은 일반적으로 대상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느낄 때 대부분 시각에 많이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시각을 통해서 우리가 본다는 행위와 나아가 자신만의 감성을 느끼는 과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날것의 모습은 인위적인 것이 첨가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보다도 인간의 감성이 쉽게 들어갈 수 있다.흰색 도화지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누군가의 그림위에 자신의 그림을 다시 그려나가는 것보다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자연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감성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자연과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감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대상을 통해서 느낀다는 것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자연과 시각에 대한 것은 대상을 보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의 자연은 아무것도 첨가 되지 않은 날것으로 보다 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개념은 지금의 시대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선 앞서 말한 자연은 말 그대로 산과 바다 등 인간이 지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것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인위적인 것이 첨가되지 않아 인간의 감정이 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도 했지만 반대로 인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아 무심코 지나칠 수 있게도 한다. 인간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무심하고, 의도를 굳이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당장 내일의 나에게 피해나 이득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스쳐지나간다. 이처럼 자연을 생물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았을 때, 현대사회에서 자연은 단순히 산과 바다 같은 것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빌딩과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태어난 우리들에게는 도시의 풍경 또한 자연과 같은 맥락에 닿아있다.

나는 자연을 통해서 대상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의 대상은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것 ,일상적이라고 생각하여 무심코 지나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가장 먼저 말한 인간 이전부터 존재했던 자연과 더불어 도시의 풍경조차도 우리에게는 스쳐지나가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대상, 일상이라는 것은 각각의 개인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스쳐지나가는 대상은 사람마다 확대되고 축소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계곡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생물적인 자연일 뿐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느낄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경험과 기억 등을 생각한다면, 인간이 대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언젠가 녹색이 살아있는 것처럼 푸르렀을 때 산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의 의식은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라는 진부한 말부터 시작하여 흐르기 시작했다. 나의 의식은 내가 보고 있는, 아름답다고 생각되어지는 색에 주목하면서 몇 가지의 녹색이 보이냐? 수십 수만 가지의 녹색이 바로 저기 있다. 보이냐?” 라고 하셨던 어느 교수님의 말까지 흘러들어갔다. 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눈이 보고 있는, 녹색의 범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의 눈은 진짜 녹색을 보고 있는지, 내가 저 색을 언제부터 녹색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지 등의 본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라도 경험, 감정 등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을 제쳐두고 다분히 생물적인 눈만을 생각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은 모두 같을 수 없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모든 눈이 같은 양의 빛을 받아들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본 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느껴야 하는 지로 나의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김나현 학생의 작품은 이처럼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의문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대상으로 사용하여 증폭시키고 있다. 앞에서 언급해왔던 무심코 스쳐지나 가는 것, 일상적인 것에는 반대로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리에 지난 시간이라는 추억이 들어갈 수도 있고, 감정이 들어갈 수도 있다. 여기서 대상 속에 있는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느냐 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속해있던 어떤 것이 대상의 빈 곳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결국 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의문과 고민의 과정이다. 녹색을 보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 나의 의식이 흘러가는 과정처럼 우리는 의문의 과정 속에서 시간과 관련된 추억을 되씹어 보는 차원이 아닌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영향과 흐름 속에서 이러한 모습의 나가 만들어 졌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김나현 학생은 이러한 의문의 과정을 스쳐지나가는 대상을 사용하여 보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들어갈 공간을 확대 시켜줌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넘쳐나는 녹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보는 녹색에 의문을 가졌었다. 나에게 일상적인 것이었던 산의 녹색을 통해서 나는 내 생각의 원류를 찾아 끝없이 올라가곤 했다. 김나현 학생은 이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 의문 속에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자신을 이루는 결정체라고 말한다. 자신을 발견한다,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라는 말은 여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진부하고 우리 세대의 현실을 뒤로 미룬 상태에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가 내려버린 결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자신의 고민과 생각의 성숙이 중요하며, 그것을 통해서 나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의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말, 자신의 모습인 결정체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이라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자신의 결정체를 발견한다는 것의 중요한 점은 바로 지금까지의 결정체라는 것에 있다.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을 통해서 나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은 다분히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결과만의 나가 아니라 나의 모습이 만들어진 과정을 함께 봄으로써 더욱 입체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수면위로 떠오른 나의 모습은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결정체를 보는 것의 중요한 점이 여기에 있으며, 고민과 의문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서 김나현 학생이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한 이유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살펴봤다. 당연하게 생각되어 질 수 있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쉽게 잊혀 진다. 우리가 김나현 학생의 안식작품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미지 자체와 제목 등의 정보에서 오는 것들이다. 침대 위에서 발을 뻗고 있는 이미지와 발을 위로하고 있는듯한 빛의 모습은 우리에게 제목 그대로 안식을 느끼게 한다. 앞에서 말한 의문과 고민의 과정이 무색할 정도로 작품을 보는 과정은 순식간에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김나현 학생의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유화라는 익숙한 재료의 사용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눈에 익숙한 이미지는 보고 있는 것에 대한 판단을 너무나도 쉽게 내리게 한다. 김나현 학생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빠르게 판단되어 지는 우리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것에 있다. 일상적인 대상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단순히 확인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생각할 수 있다. 안식이라는 감성은 김나현 학생이 느낀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림을 통해서 확인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김나현 학생은 일상적인 대상을 통해서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것들 중 하나를 제목으로 넣었다고 말한다. ‘안식에서 사용한 빛은 무수히 많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스펙트럼 속에서 반사되어 지는 일부를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 과정은 대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면서, 안식뿐만이 아닌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람자에게 있어서 작품은 보통 완성된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관람자는 완성된 그림 속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감성과 생각들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작품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 망각하곤 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완성된 작품을 통해서 들어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또한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안식작품의 사실적인 묘사와 익숙한 재료 등을 통해서 사진 작업을 떠올렸다. 실제로 사진처럼 완벽한 묘사를 하진 않았지만 익숙한 풍경은 나에게 사진과 같은 느낌을 전해줬다. 같은 구도에서의 사진과 그림을 비교하면서 그림의 작업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한 고민은 기발하고 독특한 방식을 발견하며 희열을 느끼자는 것이 아니다. 유화 작업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작업이다. 유화는 한 겹 한 겹 물감을 덧붙이고 쌓아가면서 완성된다. 이 과정은 나의 모습을 형성하는 의문, 고민들과 이어진다. 지우지 않고 쌓여가는 물감이 형성하는 것의 결과물은 일상적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대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우리가 보는 것은 어떤 의식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고민할 수 있다.

안식투명에는 공통적으로 일상적인 소재로써 빛과 물을 사용했다. 빛이 스펙트럼을 가진 체 수많은 것들 중 일부를 반사하는 것처럼 우리도 같은 대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만을 받아들인다. 물은 투명한 모습으로 대상을 왜곡시키기도 반사시키기도 하면서 하나의 대상을 수많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일상적인 소재는 손과 발과 함께 등장한다. 김나현 학생의 일상적 소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에 있다. 그것을 들어내기 위한 장치로 김나현 학생은 손과 발을 사용했다. 내면적인 부분은 자신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많은 것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면은 구체적인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히 보여줄 수 없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서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김나현 학생은 자신의 신체를 사용했다. 나를 형성하며 나에게 속해있는 신체의 일부분은 나를 형성하는 요소 중 하나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로 대표되는 손과 발은 일상적인 소재인 빛과 물에 닿으면서 스쳐지나가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일상적인 것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앞으로의 자신을 형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입체적인 자신의 관찰은 앞으로의 방향을 이야기 해주며 동시에 훈련의 역할을 한다. 훈련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통해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성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적인 것은 어떠한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은 백지와 같은 것으로 손쉽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대상은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첨가된 것으로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판단을 하는 것은 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일상적이지 않은 것,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섞여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은 다른 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결정체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성숙한다. 교류는 단순히 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간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 속에서 자신을 성숙시키고 자신의 결정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김나현 학생의 작품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안식에는 빛과 함께 그림자가 존재한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서 안식은 영원한 것이 아닌 순간의 것이 된다. 발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가장 밑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 발을 편안하게 눕힌다는 것은 우리가 비로소 쉬고 있다는 것이다. 발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안식의 빛은 곧 그림자 속에 가려질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빛이 더욱 강렬하고 간절하게 느껴진다. ‘투명에서 물은 손의 핏줄 색처럼 푸르스름하여 서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할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있다. 잡을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잡을 것이 애초에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물이 손에 담기기 위해 필사적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손은 알 수 없는 물의 투명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이라는 감정 속에서도 나는 곧 찾아올 불안감을 예상하고 있다. 안식은 나에게 정체이고, 성장의 멈춤이며,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나에게 정해진 목표와 그 목표에 다다르는 뚜렷한 과정이 존재한다면 안식은 나에게 불안감이 아니다. 과정 자체가 불명확하고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을 잡을지 모르는 방황은 결국 아무것도 잡지 않는 선택을 하게 할 수 있다. 투명한 물에 자신을 녹이는 것처럼 가만히 있을 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터뷰를 통해서 김나현 학생이 이번 작업을 통해서 유화를 처음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처음으로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재미를 인식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초등학교 6학년 자신의 얼굴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거울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나갔고 처음부터 그리기에는 너무 많이 그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눈을 그리다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릴 수 없었기에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과 색을 찾으며 진땀을 뺐다. 백지위에 선을 그려나가면서 너무나도 두려웠다. 내가 지금 그리는 선이 전체 얼굴을 망치는 오점이 되지 않을까하는 내가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지금 그 때 그린 그림이 정확히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내 그림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에 대한 기분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김나현 학생의 그림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이제는 알고 있다. 지브라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김나현 학생의 작품과 생각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냉혹한 진단을 해준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많은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어,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