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프로젝트 지브라_part2. 최지영
<설렘>

                                                                                         프로젝트 지브라_평론가를 꿈꾸는 대학생
                                                                                                                                          -정민철

 

 

부모님은 은퇴를 하고 전원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시곤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자연을 보면서 숨을 돌리고 싶다면 등산을 하거나 잠시 여행을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자연이 좋다지만 하루 이틀이지 집을 관리해야 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할수록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그런 감정들은 쉽게 귀찮음과 무료함 등으로 바뀌면서 금세 피폐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변화하는 나무를 보면서 나는 일편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군 복무 시절 변화하는 벚꽃나무를 유심히 본적이 있다. 당시는 나무의 변화가 뚜렷이 보이는 꽃이 피는 계절이었다. 나는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그 나무를 발견했다. 화려하게 꽃이 피고, 꽃이 떨어지면서 꽃잎보다 진한 빨간색의 꽃턱 부분이 보이다가 그것마저 서서히 떨어진다. 그러다 빛나는 연두색의 잎이 나기 시작하고 진한 초록이 올라온다. 그 변화들은 나에게 깊게 다가왔었다. 변화하는 나무를 보면서, 저 나무가 자라나고 변화하는 모습만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몇 년은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나무의 모습은 같은 나무가 변화하는 것이 아닌 매일 새로운 나무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자연 속에서는 항상 모든 것이 같을 수가 없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늘의 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료함이라는 감정은 느낄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은 새로움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 변화들은 나를 매일 새롭게 바꾸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할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과 여행을 하는 것처럼 새로움에 둘러싸인다면 새로움에 대해서 보다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것은 새로움의 소중함 또한 알 수 있게 한다. 일상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일상에서 우리는 익숙함을 느끼고,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우리는 일상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만나왔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만들어온 위치와 성격 등 자신의 모습을 형성하는 것들을 확인한다. 관계와 더불어 우리가 일상이라고 여기는 많은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형성해온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확인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속해있는 곳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안정감을 느낀다. 안정감은 분명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자칫 스스로의 모습에 안주하게 만들 수 있다.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 우리가 느끼지 못한 무수히 많은 미지의 것을 생각했을 때, 안주는 순응이 될 수 있고 무지가 될 수도 있으며 복종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성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며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은 정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정도면 된다, 나는 이정도면 잘 살고 있다, 라는 자기 위로는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안정감이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변형되지 않고 더욱 빛을 내기 위해서는 새로움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감정들의 흡수는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자신의 모습은 발전과 퇴보라는 차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변화했다는 자체와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새로움만을 받아들이는 상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성숙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없다면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자신만의 성숙이 없다면 단순한 기록이 될 뿐 그것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안정감은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성숙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렐 때와 도착하고 나서 지난 시간을 추억할 때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는 말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되새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일상에서 온다. 일상 속에서 새로움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 이유는 우리가 결국 일상, 안정감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또한 반복되면 또 하나의 일상이 된다. 우리가 결국 돌아가서 살게 될 일상 속에서 새로움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새롭다는 것은 우리에게 설렘을 가져다준다. 이 설렘으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해내기도 한다. 설렘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변화할 나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에서 온다. 설렘이란 감정이 굉장한 이유는 설렘을 느낀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설레기 시작할 무렵의 모습은 사실 아직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으로 변화하기 이전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설렘에 대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행을 가기 전 계획을 짜고, 도착하고 나서의 상황들을 상상하다 보면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때가 있다. 매일 마주치던 청소부 아저씨께 왠지 모르게 밝게 인사하고 싶고, 매일 보던 거리는 반짝거리며, 석양이 저렇게 아름다웠었는지 새삼 감탄한다. 여기서 새로움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앞서 새로운 것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변화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새롭게 변화한 나에게 이전과 똑같은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을 기대하며 설렘 속에서 보는 대상들은 이미 이전과는 다르다. 내가 변화했기 때문에 내가 마주하는 대상들 또한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다르게 다가오는 이전의 일상들은 다시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하여 여행과 같은 특정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또 다른 설렘을 안겨준다. 이처럼 새로운 것은 무수히 많은 일상을 다시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 마치 도미노처럼 새로움은 또 다른 새로움을 설렘은 또 다른 설렘을 가져온다. 일상이었던 하나의 대상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시 다가오는 것이 새로움의 핵심이다. 매일 새로운 것에 의해서 변화한 나는 같은 대상이지만 항상 그 속에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어떤 것도 우리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사람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대상에서 조차 여러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행복을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일상이었던 것이 곧 행복이 되는 것이다.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볼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느껴지곤 했다.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보며 보다 많은 것을 느끼려고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새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미술관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새로워진 자신의 모습으로 일상에서 행복을 찾지는 못했다. 미술관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 봤을 때는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나의 일상에 적용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결국 나는 진정으로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최지영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행여 놓칠까봐 드로잉 북을 들고 다니며 순간의 감정들마저 잡아내려 노력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나는 절박함이 보인다. 지금이 아니라면 이 감정을 쏟아낼 수 없을까봐 조바심이 난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펜의 선들은 그 절박함을 보여준다.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가장 순수하게 본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선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이어져 있는 선들이야말로 절대로 단편적일 수 없는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놓칠까봐 절박하게 쏟아내는 감정들은 다시 서로 이어져 있다. 나는 이 그림들이 모여 있을 때도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종이에 있는 끊어지지 않은 선들은 다시 종이 밖으로 나와 다른 종이의 선들과 이어져 나가고 있다. 마치 감정은 하나의 흐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 물론 각각의 그림은 그 순간마다의 다른 감정들 속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하나의 감정은 이전의 다른 감정들을 바탕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가지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들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의 작품이 각자의 감정을 가지지만, 이어져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절박 하리 만치 빠르게 쏟아내는 감정은 마치 행복을 찾으려 샅샅이 구석구석을 뒤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최지영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처음부터 거꾸로 쏟아내며,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들 속에 행복이 있진 않을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 보라고 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하나라도 놓칠 것 마냥 쏟아내며 보여주고 있다. 최지영 작가가 쏟아내고 있는 감정은 그녀가 일상에서 느낀 것들이다. 어느 순간 새롭게 다가온 일상에서 털어온 감정들을 보여주면서 최지영 작가는 여기 어딘가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새롭게 다가온 대상들은 무수히 많은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무수히 많은 의미들은 무수히 많은 새로운 자신을 만들 수 있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놓고도 우리는 일상에 파묻혀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지영 작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행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최지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그리면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다독인다고 한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모두 쏟아내고, 다시 세상으로부터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그녀에게는 많은 것들이 새롭고 설레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절박하게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 속의 무엇이든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말만 통해서는 충분히 행복이 별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최지영 작가처럼 일상의 많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별게 아닌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 보이는 감정을 털어놓는 모습은 말 그대로 절박해 보인다. 행복이 별게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녀와 같은 자세를 갖는 것, 새로움을 통한 설렘을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는 인식과 새로운 내가 되어 무엇이든 새롭게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만큼 벋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것 속에서만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녀가 쏟아내는 모습 자신의 것을 비우고 새로워지려는 모습과 노력은 그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녀는 느끼고 싶다면 느끼려고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 모든 것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새로워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 말 자체가 다시 설렘으로서 다가온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설렘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킨다. 설렘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변화 한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벌써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