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신<모두의 전기 傳記>展

                                                                                                                               새싹이음 프로젝트
                                                                                                                                     -임나래 평론가

 

수많은 현대 미술작품들이 은유와 상징으로 무장하여 관객이 어렵사리 해석해내야 하는 대상이 되지만 지연신의 작품은 관객에게 직설적으로 다가선다. 작가 스스로 “여행 중에 일어나는 기교 없는 감성으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범한 것을 좋아한다”고 밝히듯이, 그의 작업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과 감정을 유별난 수사 없이 형상화한다. 그래서 작가의 개인전 <여행의 기억>은 전시장에 낱장으로 풀어헤친 한 권의 산문집 같다. 전시된 작품이 저마다 산문집의 한 챕터가 되어 작가의 기억 속 이야기를 전한다.

필자가 지연신의 작업을 산문집에 빗댄 것은 작품 제목이 전면에 주제를 드러내며 주제가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명료한 탓이다. <여행의 기억-1>처럼 기억 속 장면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요목조목 화면 안으로 옮겨오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낱낱의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차근히 들여다보면 그 속은 결코 평면적이거나 단순하지가 않다. 하나의 작품이 한날한시 한 곳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공간을 겹쳐 상반된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음의 움직임>은 경상북도 안동을 여행하던 작가가 지금의 적막한 낙동강 변의 분위기와 조선 시대 정조 때 과거시험이 치러졌던 시사단(試士壇)의 치열함을 하나의 심상으로 표현했다. <여행의 기억-2>와 <여행의 기억-3>은 거실 소파에 앉아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작가가 아파트 숲 대신 속초의 영랑호와 터키의 찰리스 비치를 창틀 밖에 그려놓고 언젠가 난간에 찾아들었던 비둘기까지 더해서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했다. 한편 <명경지수>는 작고한 작가의 아버지가 찍은 백두산 천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백두산 천지의 파란 호수 면에 작가의 모습을 겹쳐 놓은 뒤 할아버지가 친필로 남긴 글귀 ‘명경지수’에서 제목을 가져다 붙였다. 작가 자신과 가족의 흔적을 함께 한눈에 반추하는 풍경인 것이다.

지연신은 분명히 자신이 보았고 동시에 우리가 경험했음 직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러나 그 장면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지고 붙여지고 쌓이면서 실제로 존재했던 풍경이면서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 풍경이 된다. 하나의 틀 안에 실재와 비실재(非實在)가 공존하며 시간이 순환하고 분리되어 있던 세계가 연결된다. 이러한 순환성과 연결성은 다수의 작품에서 원형으로 시각화된다. <The Shape of Relationship>에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둘러쳐 물결치는 동선(銅線)의 흐름, <Trace-1>과 <Trace-2>의 화면을 감싸는 원형 프레임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행의 기대-1>에서는 그것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빨간 기차가 여정의 어느 점에 있는지 알 수 없이 이어진 원형 레일 위를 달리고, 그 레일이 만들어낸 동그마한 터를 유한성을 암시하는 안개꽃이 가득 채움으로써 시간의 유한함과 영속성이 중첩된다. 인생의 한 막을 장식했던 여행의 마지막은 결국 평범한 삶과 맞닿고,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던 삶은 다시 다음 여행의 시작으로 향하는 것이다.

지연신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그림이 되었다가 조각이 되는가 하면, 금속을 다루다가 자연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삶의 내용을 분명하게 되새기고 있기에 지연신의 여행의 기억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곧 나의 여행의 한 조각이 되고 당신의 삶의 풍경이 된다. 우리네 삶 안에서 모든 것이 상통하므로 작가 개인에서 출발한 이야기더라도 그것을 매개로 타인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