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예+이앙의 <Prop>작가와의 만남 & 전시장면
 



조미예

 주로 세포로 작업을 하고있다. 한국이 경쟁이 심하기는 하지만,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내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에 따라서 외부적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그 가치만으로 충분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나만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자 세포위주로 작업을 했다. 세포는 자기 자신을 인식해서 다른 세포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이겨낸다고 한다. 방안에 있는 설치는 혈관을 사용한 것인데, 우리가 태어날 때 혈관과 피만 갖고 태어나서 그것을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자극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것이 내가 반응 하는 것이 아닌, 세포가 반응을 하는 것이다.



Q: 처음부터 세포로 작업하진 않은걸로 알고있다. 어떤 계기가 있는지?

A: 우리가 살고 죽는것에 대한 의미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바로 타인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이다. 장례식장을 가거나하면, '나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 말라가는 과정을 보게되니, 자연스레 신체의 변화에도 관심을 두게 되고 삶과 죽음에 대한 것에 대해도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 작업도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가 자연의 이미지와 삶과 죽음의 면에서 굉장히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시작을 했다. 누구에게는 나의 오늘의 이 하루가 간절한 하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삶을 살아갈 때 어떻게 보이는지, 나의 몸에 어떤 것이 걸쳐지는지 그 배경이 작품의 중심이 되었다.

 

Q: 원래 평면적인 작업을 해오다가 어떤 계기로 설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A: 처음에는 재료 때문에 시작을 하게 되었다. 두겹으로 레이어 작업을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설치와 연결이 되었다. 그래서 평면에서 썼던 재료를 끌고 나와서 공간으로 만들어 보게 됐다.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앙

감성지수가 낮은 사람을 감맹이라고 한다. 작업의 계기는 선인장을 지식 없이 키우다가 죽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선인장을 식물원에 가서 살려 오기도 했는데, 그 선인장은 죽음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쓰레기통에 선인장을 아무 감정없이 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것을 보고 내가 감맹 지수가 굉장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인 것이 지속됐다. 나는 그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색맹 테스트를 생각해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감맹 테스트기를 만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필름을 직접 만들면서 어쩌면 내가 완전 감맹이라는 사실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안 어딘가에 감정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기에 무채색을 많이 사용하고 싶었다. `감맹`이라는 작품명과 작품의 프로세스하고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작품들에는 그 날의 감정과 생각들이 담겨져 있다. 그 중 한 작품은  나는 자연을 매우 좋아하여 자연을 보러갔는데, 사람들이 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소리와 얼굴에 대한 생물학적 감맹을 느낄 수 없었다. 또 죽음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게 됐다.

 

감맹 테스트기는 마치 시력이 좋은 사람이 더 밑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감맹지수가 낮으면 더 잘 볼수 있다. 감성에 대한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현대인들이 계속 겪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감성이 어디가 끝인지는 모르지만 작업에서 소리의 감맹, 시작적 감맹들을 작품화 하고 싶었다

Q: 감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다른 감각으로도 확장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A: 이번 작업은 스케치를 안 하고 굉장히 극적으로 작업을 했는데 다시 또 물성으로 갈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반복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