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평론 보기

비창_그녀들의 방

미술평론 김성호

4개의 방

아프다. 이윤숙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 안에는 아픔의 흔적이 가득하다. ‘비창(悲愴)’,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이라는 이름, 그것이 전시명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그녀들의 방’. 실제로 일반 주택을 리모델링한 지하의 전시장은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 하나의 메인 홀과 두 개의 방 그리고 한 개의 공간 등 총 4개의 공간은 ‘그녀들의 방’으로 작명되었다.

가운데 큰 방은 역사 속 아픔의 세월을 견디어 오다 고인이 되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방이고 나머지 3개의 방은 작가 이윤숙이, 수원의 미술 현장에서 함께 일해 왔던, 그러나 이제는 고인이 된 목조각가 ‘김남수’와 마을 활동가 ‘이근호’ 그리고 사진작가 ‘오렌지가 좋아’ 등, 세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방이다. 전시의 반쪽 제목들을 하나로 이어 붙이니 ‘비창, 그녀들의 방’이다. 위안부 어르신만 제외하고 나머지 3사람은 모두 남자이지만, 작가 이윤숙은 그들을 위한 방에 ‘그녀들의 방’이라 이름을 붙였다. 작가 이윤숙이 세 사람의 남자를 모두, 마치 분석심리학자 융(Carl G. Jung)의 관점처럼, ‘남성 내부의 여성성의 인격화’라는 아니마(Anima)를 가득 안은 존재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쇠 가마솥 뚜껑 그리고 어머니의 젖가슴

작가 이윤숙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학순의 역사적 증언 이후 1992년 첫 수요집회가 개최한 이래 일본의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 왔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윤숙이 개인전을 가졌던 10월, 11월까지는 그랬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15년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회담에서 역사적인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2016년 1월 아직까지 합의에 대한 평가는 냉랭하다. 긍정과 부정의 평가는 엇갈리고, 여전히 수요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이제는 마흔여섯 분밖에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켜보는 우리의 눈이 시릴 따름이다.

이러한 합의조차 없었던 10월 이윤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 하나 둘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된 분들의 떠도는 영혼을 위무해 줄 방을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작은 방이지만, 그 분들의 영혼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이제는 피안(彼岸)의 세계에 편안히 거하길 염원하는 진혼제(鎭魂祭)를 드리기로 한 것이다. 작가는 그 시각적 진혼제에 ‘측백(側柏)나무’ 한 그루씩을 심었다. 조형의 언어는 할머니들의 영혼들이 측백나무를 둘러싼 채 그것을 보듬어 안아 올리고 있는 형상으로 설치되었다.

아울러 할머니의 가녀린 영혼들은 무쇠 가마솥의 뚜껑들로 형상화되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어머니들의 젖무덤을 닮았다. 봉긋한 가슴과 젖꼭지를 지닌 이 땅의 어머니들의 젖가슴 말이다. 작가 이윤숙에게 있어, 우리의 아버지를 양육하고 우리를 이어 양육했던 그 할머니들의 젖가슴이란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떠올리는 상징이다. 젖가슴은 대지의 모성신(母性神)과 같은 메타포이다. 전시 전에 실제로 유방암 수술을 운명처럼 맞닥뜨려야만 했던 작가로서는 이 메타포가 더 이상 비유의 무엇으로 남아있기보다 경험의 장에서 만난 어떠한 실재로 인식되었으리라.

한국의 모든 어머니가 겪었을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작가 이윤숙은 이 무쇠의 가마솥 뚜껑 안에서 발견한다. 대지를 감싸듯이 덮고 있는 무쇠 솥뚜껑들은 거대한 하나의 젖무덤으로 다시 모여 측백나무 한 그루를 보듬어 올린다. 자신의 몸의 모든 영양들을 이 땅에 그리고 자신이 품고 있는 소망의 모든 에너르기를 측백나무에 나눠 주는 젖무덤과 같은 솥뚜껑들이란 우리의 어머니들에 대한 상징이면서 동시에 실재적인 초상이 되는 것이다.

그녀들의 아니무스와 그들 안의 아니마,

보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차안(此岸)에서의 아팠던 삶과 그분들이 처연히 끌어안았던 기억의 편린들을! 그녀들은 강인했다. ‘여성 내부의 남성성의 인격화’라는 ‘아니무스(animus)’를 가득 안고 있었던 그녀들은 진정 우리의 어머니들이자 동시에 우리의 역사를 강인하게 견인해 가는 가장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어머니로서의 그녀임과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그들이기도 한 삶을 함께 살았다. 그렇다! 작가 이윤숙은 그녀들의 강인하지만 처연했던 ‘차안’에서의 고단한 삶을 위무하고 ‘피안’에서의 한 많은 넋을 달래고자 그녀들의 방을 짓는다.

보라! 여기 또 다른 그녀들이 있다. 생물학적 성은 분명코 남성이나 작가 이윤숙이 ‘그녀들로 바라보는 그들’이 있다. ‘남성 내부의 여성성’이라는 아니마(anima)를 가득 안은 이들. 그래서 작가는 ‘그들’을 ‘그녀들’이라 부르기로 했다. 작가 이윤숙에게 그들은 한결같이 수다스럽거나, 다정다감하고, 관계 지향적인 내면의 정을 가득 품고 있었던 아니마적 여성들이었다. 그들, 아니 그녀들 4인은 수원의 ‘행궁동 역사문화예술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했던 미술 매개자이거나 예술가들이었다. 행궁동 레지던시 입주 작가였던 목조각가 ‘김남수’, 마을르네상스 센터장과 수원 의제21 사무국장을 지냈던 ‘이근호’ 그리고 사진작가 ‘오렌지가 좋아’는 작가 이윤숙에게 있어 누이와 같은 그녀들이었다.

2015년 꽃향기가 진동하던 어느 봄날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이는 사진작가 ‘오렌지가 좋아’였다. 너무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기리기 위해 작가 이윤숙은 소담한 방 한 구석에 가장 파릇한 어린 측백나무 한 그루를 준비했다. 너무 젊은 그를 보낸 마음이 아파서였을까? 가마솥 뚜껑 조각들을 늘어놓고 그 위에 고운 황토 가루를 뿌리면서도 뚜껑 끝이 마치 젖꼭지처럼 보일까봐 뚜껑 몸체에 차마 손잡이를 달지 못했다.

뒤를 이어, 맏형, 혹은 맏누이 같던 ‘김남수’가 세상을 떠나던 그날은 작가 이윤숙이 유방암 수술차 병원에 입원했던 뜨거운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김남수라는 한 영혼이 차안과 피안의 갈림길에 들어섰던 것을 그녀에게 예고한 것일까? 작가 이윤숙은 이제 가장 큰 방을 마련하여 고인들 중 맏이를 기념하고자 했다. 듬직한 측백나무 한 그루를 둘러싼 채 9개의 솥뚜껑 조각으로 큰 원을 만들어, 목조각가로서의 그의 모습을 기림과 동시에, 미완성으로서의 큰 덕목인 숫자 9의 의미를 작품 속에 함께 녹여 내었다.

김남수의 뒤를 이어, 작은 누이와 같은 ‘이근호’가 이승과 이별한 것은 날씨도 청명한 가을이었다. 수원을 살기 좋은 마을(역사문화예술마을)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할 일들을 동료들에게 남겨 둔 채 갑작스럽게 떠나 버린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작가 이윤숙은 솥뚜껑의 위아래를 이어 붙여 마치 우주선이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할 일을 다 못하고 갔으니, 남겨진 일들이 잘 되고 있는지 천상으로 가기 전에 우주선을 탄 채로 확인해 달라는 식의 청유의 마음을 작가 이윤숙은 이러한 형식 위에 산뜻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지역의 미술 현장을 위해 힘쓰다 생을 달리 한 갑작스런 3인의 죽음, 그것도 봄, 여름, 가을, 변화하는 3계절마다 이어진 부고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 소식은 작가 이윤숙의 마음을 후벼 판다. ‘그들 안의 아니마’를 끌어안은 채 이제 그녀는 통곡의 추모와 진혼으로 그들을 위무하여 보내고자 한다. 마치 전시명 ‘비창’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제는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작가 이윤숙 주변에서 세상을 떠난 선후배 미술인들은 ‘그녀들’과 ‘그들’이라는 성 변별성에서 서로 확연히 다른 존재이지만, ‘그녀들 안의 아니무스’와 ‘그들 안의 아니마’로 인해 양자가 어렵지 않게 ‘여성’으로 만나게 된다. 작가 이윤숙의 이러한 심리적 모뉴먼트 위에서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마치 융의 분석심리학의 연구 결과에서처럼, 하나의 공통분모로 서로 만난다.

아니마/아니무스가 만드는 공통분모란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의 장에서 생성시키는 공통의 ‘태고 유형(archetype)’ 혹은 ‘원형(prototype)’에 다름 아니다. 그 원형이란 신화의 세계에서 만나는 이집트의 독수리 머리의 모성신(母性神) 무트(Mut) 혹은 원형적 모체(母體), 즉 생성의 자궁인 ‘코라(chora,χώρα)의 공간에 다름 아니다.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의하면, 이곳은 주체가 생성되는 동시에 부정되는 장소이다. 즉 크리스테바의 논의에 기대어 우리 식으로 말하면, ‘코라’의 공간은 ‘주체/객체’, ‘자아/타자’라는 ‘생성 과정 중의 주체’가, ‘그녀들’이라는 이름을 지닌 채, ‘죽음 안에서 생성(genesis)’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윤숙의 작품에서 분명코 망자들을 위무하는 진혼제의 설치 공간은 죽음의 공간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이내 죽음 안에서 생성되는 코라의 공간을 지향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태고 유형’ 혹은 ‘원형’은 멀리 있지 않다. 작가 이윤숙에게 있어 그것은 1985년 대학원 졸업 이후 자신을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 찾은 것이자, 1990년대에 백두대간도 거슬러 올라가고 1997년에 히말라야 산맥에도 오르면서 또는 네팔을 오가면서 느낀 자연과 인류의 근원적 본성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즉 집단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원형’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우리가 당면한 자의식, 즉 인간 공동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우리의 노력들은 어쩌면 허망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타자 앞에 그럴싸한 대자적(對自的) 주체만 내세운 것이 아닐까? 그것은 나를 감춘 자아,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나를 숨기는 가식적 자아로서의 ‘페르소나(persona)’가 아니었을까? 융(C. G. Jung)에 의해서 ‘외적 자아’로 고찰된 페르소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어진 자아’, 즉 ‘타인에 의해서 발견되는 자아’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즉자적(卽自的) 자아’를 버리고 대안으로 찾은 ‘대자적(對自的) 자아’이거나 또는 이기적 자아를 내던져 헌신하면서 찾은 사회적 자아의 실상이란 나의 본 모습을 감춘 가면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래서 작가 이윤숙은 망자(亡者)들에게 다음처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대들이 간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혹여 페르소나라는 ‘외적 자아’ 혹은 ‘집단무의식’의 최면을 간직하고 살았다고 한다면, 이제 그 짐을 벗고 편히 떠나시게,” 그렇다. 떠나는 그들을 축하할 일이다. 최소한 페르소나의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당위의 압박 속에서 즉자적 자아를 잃어버린 채 매일을 살았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마치 불경 ‘숫타니파타(Sutta Nipāta)’에서 언급된 다음의 기도문처럼 훌훌 털고 혼자의 길을 가라고 말이다: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중략)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강렬한 무쇠의 솥뚜껑으로 젖무덤을 만들어 이 비루한 현실을 떠난 망자들을 위해 ‘그(녀)들의 방’을 만들고 그(녀)들의 혼을 위무하는 이윤숙은 이제 망자들의 여한(餘恨)이 이승의 언저리에 남아 떠돌지 않기를 바란다. 아쉬움, 서운함, 배신, 좌절의 의미를 던진 채, 이제 할 일을 다 마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피안의 세계로 떠날 채비에 나선 망자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혼자서 가는 주체’로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