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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_그녀들의 방

-이윤숙 개인전에 대한 단상-

미술평론 박진희

이번 전시는 “사유의 시간‘이 필요한 전시다. 즉 예술작품이 그 자체로 관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코드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시간을 작용하게 하는 전시인 것이다.

이윤숙의 전시에서 한 눈에 보이는 작업형태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마다 가마솥 뚜껑들이 여인의 젖무덤처럼 쌓여 있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체에 곱게 내린 황토가 뿌려져 있다.
이 전시는 “고단한 무게와 안식의 장”이라는 다소 이율배반적 느낌이 공존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고단한 무게는 사랑의 무게로 대체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고요한 평화를 불러낸다. 전시제목 ‘비창(명사: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과 함께 나열된 단어 ‘그녀들의 방‘은 전시 전체를 아우르기보다는 마음의 슬픈 상태를 위로로 품어주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이전 작업에서부터 선택된 오브제인 ‘솥뚜껑’은 한국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의 코드로, 어머니의 젖가슴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가진다. 이 솥뚜껑은 무덤과 같이 쌓아올려져 비창. 슬픔의 대상에게 애도의 장으로 대체된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조차도 일본 위안부 여성의 슬픈 넋을 위로하고, 뜻을 함께 했던, 세상을 먼저 떠난 동료를 위한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작가의 어법과 전시는 무척 닮은꼴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녀가 인지하고 감내해야 하는 세상의 고통을 형상화하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하고 품어내는 대자연의 어머니 된 존재의 태도를 나타내는 듯하다.

자연의 생명(나무)을 둘러싼 솥뚜껑, 그 철의 무게감은 그 물성이 사랑과 인내의 무게로 대체되어 있다. 여성성을 상징하는 이 오브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되어 “여성화된 자”의 넋두리가 아니라 젠더를 초월하는 “어머니‘된 자들의 포용과 위로의 힘을 드러낸다. 여성의 관점을 초월하여 어머니 된 대우주의 ’품어 위로하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인간 이윤숙과 예술가 이윤숙은 분리될 수 없다. 작가는 신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세상의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하는 어머니, 모성의 코드를 예술로 품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작품이란 굳이 글로써 조각내어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 작품 앞에 선 관중이 어떤 감각이나 의미를 감지하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예술가의 시도는 이미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슴의 울림을 품은 예술은 심오하기 짝이 없는 철학조차도 ‘의미 없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성의 나침반을 읽어가는 21세기에 어쩌면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은 과학 따위가 아니라 이러한 예술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