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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CANCY - 공석(空席)을 향한 이중적 시선

김수진 예술기획, 평론

일상의 단편과 자화상을 주제로 작업해온 작가 문민정은 2006년부터 〈VACANCY〉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욕망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공석(空席)’에 비유함으로써 이를 향해 강박적으로 내달리는 상황을 작품의 소제로 하여 비교적 직설적인 화법으로 표현한다. VACANCY〉시리즈에서 화면의 중심에 자리한 비어 있는 의자는 공석을 상징한다. 공석은 비어 있는 상태의 현재와 동시에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채워질 미래에 대한 잠재성의 공간이다. 바꾸어 말하면 비어 있는 모든 것은 어떤 무엇인가로 채워질 잠재적 가능태(可能態)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비움채움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공간은 마치 욕망이 충족되는 동시에 또 다른 욕망을 채우기를 갈구하듯이 교차, 반복되면서 끊임없는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의자들은 화려한 색상과 장식적인 요소로 각기 다른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을 드러내는 작가의 이중적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VACANCY-prestige(2012)를 들 수 있다. 화면에 나란히 놓여 있는 두 개의 의자를 배경으로 수많은 고급구두가 에워싸고 있는 형상을 표현한 작품인데, ‘prestige’라는 클래스를 차지하기 위해 익명의 경쟁자들이 최고급 브로그(Brogue)’로 위장한 채 공석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VACANCY-Avarice(2014)<VACANCY-Temptation(2015)등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화면의 배경에 새겨진 열쇠를 비롯한 여러 상징적 기호들은 탐욕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메타포라고 언급할 수 있다.

작가는 공석을 향하는 심리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변하게 되기 마련이고 성장해야만 하는 숙명론적 논리와 이 진리를 일상이라는 공간에 실행하기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역기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건데 공석에 대한 불안심리는 비단 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 대한 암묵적인 고백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지나는 동안 작가로서의 공석에 대한 불안심리와 본인의 언급대로 종교적인 냉담에 대한 성찰 내지는 고백이 탐욕과 집착이라는 은유를 통해 일종의 자기위안이나 보상적 차원에서 표현된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VACANCY-Prie Dieu>(2015)에서처럼 6개의 의자를 공석으로 형상화하여 종교적인 냉담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였고, <VACANCY-Avarice(2014)에서는 공석과 탐욕이라는 외적 형식을 빌어 종교적인 기호를 은유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 공석을 상징하는 의자 외에 이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등장하는 가방은 작품의 제목처럼 짐 지어진또는 무언가로 이미 채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2006년 작인 <VACANCY-Burden>(2006)으로부터 시작된 채움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VACANCY-Persona>(2015)에 이르러 비로소 작가의 정체성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면의 구성 면에서도 기존의 작품들은 의자와 가방이 중심이 되는 구도를 보였지만, ‘Persona’에서는 인물을 중앙에 두고 배경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공석을 향하는 상징적 징후들로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얼굴이 잘린 인체는 가면을 쓴 익명의 존재에 대한 상징일 것이고, 무언가로 가득 채운 가방을 양 손에 들고 지금 막 영욕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향하는 상황을 표현하였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비움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채움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결국에는 시간의 경과와 일정한 방향성에 의해 페르조나(persona)가 확립되어 나간다는 논리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VACANCY-Persona>200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해온 이 시리즈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임과 동시에 작가에게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VACANCY>시리즈는 비움채움이라는 상반된 논리이자 순환적인 과정을 통해 삶을 실행해 나간다는 작가의 자기고백적인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 앞서 논의했듯이 작품에서 공석이란 절대적인 무()를 의미한다거나 비움의 차원에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채움을 위한 비움이듯이, 잠재성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 이중적인 표현이라고 언급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움과 채움이라는 동시성과 순환성의 관점에서 보면 삶이란 연기적(緣起的)인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